고금리를 이어온 미국에 경기 침체가 닥칠 것이라는 대다수 전문가 예상과 달리 최근까지 고용과 소비가 크게 무너지지 않아 의아함을 자아내는 가운데, 실질 소득이 증가하고 정부가 제조업 지원책을 쏟아낸 덕분이라는 분석이 외신에서 나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고용, 탄탄한 소비 등 미국 경제가 놀라울 정도의 탄력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노동부가 1일 발표한 고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8만7천개 증가했고, 실업률은 3.8%를 기록했다. 8월 일자리 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17만건을 상회했고 실업률은 전월 대비 0.3%포인트 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긴 시간에 걸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완화했으며 일자리는 늘어나고 임금은 올라가고 있다"며 "팬데믹 기간 잃었던 모든 일자리를 회복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미국의 기준 금리는 현재 2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연 5.25∼5.50%에 달한다. WSJ은 이런 고금리 속에서도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우선 인력 증가와 물가 인상 둔화로 인해 실질 소득이 증가했고 더 많은 고용과 지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7월 실질 세후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했고, 이 수치는 지난 1월 이후 매달 전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국 경제 생산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 지출이 촉진된 것으로 분석됐다.
리서치 회사인 르네상스 매크로의 이코노미스트 닐 두타는 "연준은 신용에 민감한 활동을 확실히 둔화시켰다"며 "하지만 견고한 소득 성장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척추는 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번째로 WSJ은 팬데믹으로 인해 막대한 수요가 억눌렸다면서 이런 수요는 금리 인상에도 덜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동차 생산의 경우 2020년과 2021년에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따라잡는 등 덩달아 산업 활동도 활발해졌다.
마지막으로 WSJ은 팬데믹 때 현금과 저금리로 경기를 부양했던 미국 정부가 이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 제조업 지원 정책을 통해 막대한 규모로 지출을 늘린 덕에 민간 부문 투자가 더욱 촉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고용시장 붕괴 등 경기 침체를 피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는 '경제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도 높였다. 연착륙에 대한 기대감이 증시에 반영되면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올해 17% 이상 상승했다.
건설업체 서퍽의 최고경영자(CEO)인 존 피시는 "우리는 연착륙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 회복, 추가 연방 지출, 금리의 궁극적 하락 등이 결합하면 경제의 서비스 분야에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얀 하치우스도 최근 데이터는 연착륙 전망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7월 그는 향후 12개월 동안의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을 기존 35%에서 20%로 낮추기도 했다.
다만, 미국 경제 강세의 지속 여부를 전망하려면 중국, 독일 등 다른 주요 경제권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 규모 세계 2위의 중국은 최근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에 진입한 가운데 부동산 부문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독일도 수출 경쟁력 둔화 등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