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촉발된 물가 급등과 인력 부족 현상이 맞물리면서 이른바 `임금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삼성과 LG 등 IT 대기업들이 10%에 가까운 연봉 인상에 나서면서, 이제 그 화살은 전통 제조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신재근 기자입니다.
<기자>
임금 협상에 돌입한 현대차 노조의 요구는 지난해보다 훨씬 더 강경했습니다.
지난해 인상폭(7만5천 원)의 두 배가 넘는 기본급 7.2% 인상에 더해 지난해 순이익(6,455억 원)의 30%인 약 2천억 원을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현대자동차지부 노조 관계자: 노동조합은 현대차가 번 만큼 가진 만큼 요구합니다. 작년 6조7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습니다. 타 대기업만큼 올려야 한다는 MZ세대들의 요구가 있습니다.]
개발자 대란에서 촉발된 IT 업계의 임금 인플레이션이 이제 IT 대기업을 넘어 전통 제조업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삼성과 LG그룹의 IT 계열사들이 10%에 가깝게 임금을 올리자, 다른 대기업들도 술렁이고 있습니다.
특히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는 물가는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명분이 되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소비자물가가 5% 가까이 오르는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근로자들이 실제 손에 쥐는 실질 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윤동열 / 건국대 경영학 교수: 장기적으로 기준금리도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고, 인플레이션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대기업의 노조 입장에선 임금 인상을 압박할 수밖에 없겠죠.]
이미 노동계 양대산맥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올해 10% 가까운 임금 인상안을 확정했습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기업과 노동계의 갈등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앵커>
그 어느 해보다 임금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이 거센 것 같습니다. 산업부 김민수 기자와 보다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김 기자, IT업계에서 연봉을 크게 올렸다는 뉴스는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이제는 전통적인 제조 기업들까지 임금 인상 압박이 거세졌군요.
<기자>
일단 임금 인플레이션은 본격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큰 폭으로 연봉을 올렸고,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촉발된 물가 급등에 인력 부족 현상이 맞물리면서 임금 인상 요구도 빗발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건비 인플레이션은 사실 몇 년 전 IT업계에 촉발됐습니다. 대규모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이 인재 유치를 위해 높은 연봉으로 개발자 스카웃에 나서면서 시작된 건데요.
그 영향이 다른 스타트업들과 게임업계를 거쳐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으로 향했고요. 이제 삼성이나 LG그룹의 대형 IT계열사들까지 인상 행렬에 동참하게 된 거죠.
상징적인 삼성과 LG가 10% 가까운 연봉 인상에 나서자, 철강·조선·화학 등 전통 제조업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앵커>
문제는 개발자 대란으로 연봉을 올라갈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엄청난 고물가 상황이란 말이죠. 임금 인상 압력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기자>
그 어느 해보다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 생긴 것은 분명합니다.
엄청난 인플레이션 때문에 웬만큼 연봉을 올려도 실질 임금이 하락할 상황이니까요. 직원들 입장에서는 인력난에 더해서 인플레이션 해지라는 협상 카드가 생긴 거죠.
때문에 어느 정도 높은 폭의 임금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임금 인상 폭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지난해의 경우 물가상승률이 2.5%였는데 실질 임금 상승률은 2.0%였거든요. 올해는 그 차이가 더 커지겠죠.
하지만 노사 간의 입장은 다르겠죠. 곳곳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됩니다. 올해 춘투가 대규모 파업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죠.
특히 전통적인 제조업의 경우는 임금 인상은 커녕 오히려 구조조정이 필요한 곳도 있거든요. 전 세계적인 산업 재편 속에 더 이상 많은 인력이 필요없는 곳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기업들이 이렇게 임금을 올려 줄 여력은 있는 겁니까?
<기자>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몇 년 새 연봉을 크게 올린 곳 가운데 대표적인 네이버와 카카오의 사례를 한 번 보죠.
카카오는 올해 1분기 인건비로 4199억 원을 썼습니다. 1년 전 보다 43%나 늘었죠. 네이버 역시 지난해 1분기보다 인건비를 15%나 더 썼습니다.
실적 악화는 불가피했죠. 전체 영업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5%에서 30%까지 치솟았다고 하는데, 올해 실적 악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익률도 높고 대표적인 성장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가 이정도인데, 다른 기업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부담이 클 수밖에 없겠죠.
특히 대·중소기업 연봉 격차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지난 1년 새 2배에서 2.4배로 크게 확대됐거든요. 올해는 그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앞으로도 물가 상승은 당분간 불가피한데, 임금을 둘러싼 갈등 해소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해법이 있을까요?
<기자>
지금의 물가 상승은 경기 호황 때문이라기보다 원자재 가격 상승 같은 공급 측면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것이거든요.
고물가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고, 임금 상승으로 인해 다시 물가가 올라가고 결국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죠.
무작정 연봉을 줄일 수도 없습니다. 때문에 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일하는 문화를 바꾸는 다양한 시도에 나설 겁니다.
더 이상 연봉을 올려줄 수 없는 IT기업들은 새로운 근무형태로 복지 강화에 나서고 있죠.
예를 들어, 네이버는 주 3일 출근이나 완전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고요. NHN 클라우드는 파격적으로 주 4일 재택근무를 합니다.
전 세계적인 산업 재편과 맞물려서, 경직된 우리나라의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질 겁니다. 고용을 유연화 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수차례 이직을 하면서 연봉을 한껏 높인 직원을 정년까지 데리고 간다는 게 기업 입장에서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윤석열 대통령도 오늘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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