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4일(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핵심 파트너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여론 조사에서 우위이긴 하지만 결선에서 맞붙는 극우 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가 승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스타일인 르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바이든 정부는 양국 양자관계와 유럽 정책,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 등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당장 유럽과 공조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전략 구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 유럽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현 상태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르펜 후보는 20일 TV토론에서 러시아 경제 시스템과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재벌)에 대한 제재는 반대하지 않는다고는 했다. 다만 그는 프랑스 국민의 고통을 이유로 러시아산 석유·가스 금수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싱크탱크 독일 마셜펀드 파리사무소의 마틴 쿠엔체즈 부국장은 "르펜이 당선된다고 해서 선출 2주 뒤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관계 재정립 문제를 논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보다는 르펜의 당선으로 유럽과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새 제재 합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르펜 후보는 최근 나토에서 프랑스의 역할을 축소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뒤 러시아와 `전략적 화해`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를 전쟁으로 끌어들일 위험성이 있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꺼린다.
르펜 후보의 당선은 미국의 대유럽 정책과 유럽연합(EU)의 결속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NYT는 전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트럼프 정부에서 소원해진 `대서양 동맹`을 재강화했으며 EU는 미국의 러시아와 중국을 겨냥한 견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EU와 나토를 비판해온 르펜 후보는 EU의 영향력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오바마 정부 때 국가안보회의(NSC) 유럽국장을 지낸 찰스 굽찬 조지타운대 교수는 "프랑스에서 극우 정부가 집권하는 것은 정치적인 지각변동"이라면서 "서방세계의 정치적 건강함에 대한 걱정스러운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유럽이 놀라울 정도로 단결한 순간"이라면서 "그러나 르펜의 당선은 유럽의 계획에 중대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아가 르펜 후보가 이기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 문제로 잠복했던 유럽 내 각종 논란이 표면화될 수 있다. 인종 차별주의에 기반한 극우 정치나 보호무역주의 등이 다시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독재국가에 맞서 민주주의를 확산·강화하려는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 의제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헝가리는 지난달 극우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가볍게 재집권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는 극우 정당이 프랑스를 실제 이끌 수도 있다는 전망과 함께 민주주의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방증이라고 NYT는 보도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이 안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은 지난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동맹을 결성하면서 호주에 핵잠수함을 공급기로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호주의 디젤 잠수함 공급계약 파기로 이어졌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계약 파기 문제를 항의했다. 특히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계약 변경을 알게 된 것에 크게 분노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