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까지 연간 60억달러(약 7조3천억원) 규모의 아프가니스탄 정부 예산을 책임졌던 할리드 파옌다(40) 전 재무장관은 이제 미국 워싱턴DC의 우버 기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기자를 태운 채 워싱턴DC 시내를 달리며 손님을 찾던 그는 "앞으로 이틀간 50번 운행을 하면 95달러(약 11만5천원) 보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카불 함락으로부터 불과 일주일 전 아슈라프 가니 당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재무장관직을 내려놓았다.
파옌다는 "그(가니)는 화가 나 있었고 두서가 없었다"면서 대통령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라 자칫 누명을 쓰고 체포될 것을 우려해 미국행을 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운명의 날인 2021년 8월 15일 그는 미국에서 아프간 패망 소식을 접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제 끝났다. 우리에겐 국민을 위해 봉사할 시스템을 만들 20년이란 시간과 전 세계의 지원이 있었다. 우리는 지독하게 실패했고, 우리가 건설한 건 부패란 기초 위에 세워진 종이로 지은 집에 불과했다"고 적었다.
파옌다는 1992년 내전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피란했다가 2002년 미국에 의해 탈레반 정권이 붕괴하자 귀국해 아프간 재무부 차관 등을 지냈다. 개혁파 관료로 분류되는 파옌다는 2020년 말 가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재무장관직을 제안받았다.
이미 탈레반 쪽으로 전세가 기운 데다가 부정부패로 인한 정부 재정 누수의 책임을 덮어쓸 수 있다고 주변이 만류했지만, 그는 재무장관직을 받아들였다.
국가재정이 제대로 쓰이지 못한 탓에 코로나19에 걸리고도 200달러(약 24만원)짜리 인공호흡기가 병원에 없어 목숨을 잃은 모친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이제 와선 그 결정을 후회한다고 그는 털어놨다.
파옌다는 아프간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개혁을 하겠다는 공통의 의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아프간 패망 몇 개월 전 칸다하르 외곽에서 하루 수백만 달러를 빼돌리던 불법 세관 검문소를 깜짝 방문했을 때는 해당 시설을 운영하던 경찰들이 오히려 그에게 총을 들이대며 협박하는 일이 벌어졌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탈레반의 손에 넘겨준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고 파옌다는 토로했다.
그는 우버 기사로 일하는 외에는 조지타운대에서 전쟁·국가재건 관련 강의를 하면서 학기당 2천 달러(약 240만원)를 받는다.
그는 돈 때문에 강의를 맡은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미래의 미 정부 당국자와 구호기관 직원이 될 학생들이 원조 공여자가 아닌 원조를 받는 이들의 시각으로 분쟁을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