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봉긋 솟은 암벽처럼 울퉁불퉁하여
어이~ 잠시 수평의 길을 걷고 싶다면
꽁로동굴에 가보자
겨우 두 사람의 몸만 실을 수 있는
모터보트에 앉아 마음의 바닥을 턱 내려놓자
물의 표피는 살을 에이 듯 날렵해지고
부딪혀 펼쳐진 수평의 어지러움들
내림인지 오름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호수
다소곳하게 들이대는 물의 응석들
끝이 보이지 않는 잔잔함의 중심에서
이 수평도 결국은 거대한 굴곡임을
수 십 미터 바닥을 채운 물의 공덕 위에
우뚝 선 봉오리의 가림막 아래에 있음을
물고기의 숨소리는 고사하고
메아리의 응답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뻑뻑한 절벽들의 잔재라는 것을
꽁로동굴 어둠 속에서 알 수 있다
왜 이리 시간이 빠른지
흰머리가 새치를 덥수룩하게 덮치고
정오의 시계가 갈팡질팡 어지러운 날
꽁로동굴에 가보자
7.5km의 동굴의 시간은 멈춰있다
강물은 흐르지만 어둠은 흐르지 않는다
동굴 밖 기억이 없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는 이 어둠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그 자리에
그 새파란 어둠이 갇혀 있다
시간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나이도 주름도 보이지 않는다
앳되고 앳된 어둠을 만나고 나면
덩달아 어린애가 되고 만다
꽁로동굴에 머무는 동안에는
누구도 늙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날에는
꽁로동굴에 가보자
침묵보다 두려운 시린 고요에 휩싸여
어둠이 간직한 먼 옛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암벽을 두드리면 석가모니 보다 더 먼 옛날의
공룡의 발자국 소리가 둥둥 울려퍼진다
은하수가 펼쳐질 것 같은 동굴의 천정에서
별자리를 찾아내려 고개를 들어보지만
별도 태어나기 이전의 어둠이라 보이지 않는다
길다란 종유석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빛이 없어도 자라나는 원시의 향기가 입술을 때린다
어머니의 어머니보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보다도
더 오래된 기억들을 어둠은
저렇게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것이다
춘삼월 지구상에서 가장 더운 이 곳
사람이 어떻게 살지
개도 혓바닥마저 입속으로 집어 감춰버린 날
더위도 지쳐 잔뜩 더위에게 짜증을 부리는 날에는
꽁로동굴에 가보자
동굴 입구는 이미 녹색 물빛에 취해
물고기 떼가 길을 안내하고 있다
보트를 타자마자 닭살이 울퉁불퉁 돋아
긴 소매로 갈아입고도
비어라오 캔을 몇 개 비워도
한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얕은 물살에 내려
모래사장을 걸을 때는 털신을 신고 싶어진다
누군가 조금 더 있자고 추근댄다면
햇살을 쫒자고 사공을 조르고 말 것이다
여름 한철 더위를 잊고 싶거든
아니 삶의 무더위가 무거운 날에는
꽁로동굴에 가보자
꽁로동굴 앞에는 꽁로마을
꽁로마을에는 꽁로사람들이 오순도순 살고 있다
새해 벽두 꽁로동굴에서는
들어갔다 나올때마다 일출이 수십개다
괜시리 사람이 미워지는 날에는
꽁로동굴에 가보자
멎은 시간에 맞추어 멈춘
원시의 산과 원시의 물과 원시의 나무들
동굴을 지나면 또 하나의 초원들
한 며칠 있다보면
내 이름도 까먹을 것 같은
꽁로동굴에서
사진 한방 박고서
가난한 꽁로사람들과 술 한 잔 마시고 싶다
라오증권거래소 COO 황의천
*2022년 새해 첫날 꽁로동굴까지 15시간 동안 운전을 동행해준 DGB라오스법인장님(김정현)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