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잡플래닛에선 전·현직자가 익명으로 직접 남기는 기업평판과 함께 생생한 면접 후기, 연봉, 복리후생 등을 볼 수 있다. 덕분에 취준생은 물론, 직장인들 사이에서 잡플래닛은 ‘취업과 이직의 나침반’으로 자리 잡았다.
잡플래닛 사용자들이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지표는 기업평점이다. 전·현직자가 익명 리뷰를 남길 때 5.0을 만점으로 기업평점도 함께 등록하고 이를 평균을 낸 점수가 기업 소개의 페이지 중앙에 표시돼 있다. 영화로 치자면 20자 평의 별점 같은 셈이다.
기업평점은 가장 확연하게 눈에 띄는 지표다 보니, 사용자들 사이에서 평점 3.0 이하의 회사들을 ‘믿고 거른다’는 분위기도 자연스레 생겼다. 대개 비전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치명적 단점이 있어서 애써 들어가봤자, 다시 나올 수밖에 없는 ‘회전문 기업’이라는 것이다.
● 기업평판이 예견한 화려한 A 기업의 숨겨진 리스크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A 기업이 심각한 제품상의 하자로 곤두박질칠 때, 이 사태를 미리 예견한 것이 잡플래닛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A 기업의 성공 신화가 온갖 미디어에서 찬양을 받을 때, A 기업의 잡플래닛 기업평점은 2.0점대였다. 전·현직자의 리뷰를 읽어보니 낮은 평점이 이해가 갈 정도로 회사의 속사정은 답답함 그 자체였다. 체계가 전혀 없어 주먹구구로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무리하게 사업영역을 늘려 불안하다는 점이 주를 이뤘다. A 기업은 현재 본래의 사업영역이 아니던 부분에서 제품상의 사고가 발생해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태다. 전·현직자들이 꼬집었던 바로 그 부분에서 위기가 발생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셈이다.
확실히 이제는 기업도 잡플래닛의 기업평판을 회사에 대한 사원들의 불만 정도로 여기지 않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A 기업의 낮은 평점과 민낯의 리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캡처로 떠돌자, 신기한 일이 하나 벌어졌다. 기업의 이미지에 좋지 못한 리뷰들 대신, 갑자기 좋은 리뷰들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평점도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중 5.0 만점을 주는 리뷰에는 A 기업이 너무나 체계가 잘 잡힌 회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다수의 리뷰들이 지적했던 단점들과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그 무렵 누군가 평판을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냐며 지적하는 리뷰도 올라왔다. 하지만 모든 리뷰가 철저히 익명으로 이뤄지기에 누군가 진짜 평판을 관리한 것인지는 쉽게 단정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잡플래닛이 제공하는 기업평판 서비스의 신뢰도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 진짜 리뷰를 방해하는, 어뷰징 기업들의 등장
기업이 직접 나서서 기업평점을 관리하는 것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이한 모습은 아니다. 잡플래닛이 벤치마킹한 미국의 기업평판 및 구직 사이트
‘글래스도어’는 그야말로 평판 전쟁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월 글래스도어의 기업 평판 서비스가 세계 취업시장에서 중요한 참고지표로 자리 잡자 기업들이 평판 관리에 뛰어들어 혼란을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긍정적인 리뷰가 특정 시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의도적 어뷰징’이 나타난 것이다. 매체는 이런 어뷰징 의심 기업으로 앨런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 X나 SAP 등 세계적인 대기업도 포함돼 있다고 발표했다.
호텔 리뷰나 음식점 리뷰에 알바생을 고용해 의도적으로 좋은 리뷰를 남기는 것처럼, 기업 평판도 관리하기 시작하면 기업평판 서비스는 강력한 필터링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지만, 꼭 이런 상황까지 가야했나란 아쉬움도 남는다. 세계적 기업이든 아니면 한국의 중소기업이든 자신의 민낯을 받아들일 용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 잡플래닛은 중소기업을 죽이는 독사과인가
7월 9일 세텍에서 열린 제2회 SBA 인사 네트워크 세미나 ‘HR TOK’에서도 잡플래닛에 대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서울 소재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1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에 주제 강연자로 은진기 잡플래닛 이사가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날 은 이사의 강연주제는 ‘중소기업의 효과적인 채용 브랜딩 방법’이었지만 질의 시간이 되자, 잡플래닛에 대한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의 항의가 급작스레 쏟아져 나왔다.
안 그래도 사람이 귀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잡플래닛의 기업평판 서비스가 치명적이라고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은 이사는 “인사담당자나 스타트업 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라며 말을 이어나갔다. “잡플래닛은 기업을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가 아니며 어느 기업이든 장점만 있지 않다.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에서 미흡한지 제대로 표현돼야 결과적으로 지원이 늘 것이라 생각한다”고 은 이사는 말했다.
은 이사의 항변은 기업평판 서비스를 통해 기업이 먼저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일 때 기업도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말 같았다. 중소기업들 입장에서야 원했던 답변이 아니니, 계속해서 불만이 이어졌고 상황을 매듭지은 건 함께 세미나에 참석한 박재형 인터핏 월드 와이드 이사의 한마디였다. 박 이사는 “우리가 이런 서비스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상태에서 날것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되니 당황할 수밖에 없다”며 “한편 생각해보면 누군가 나쁜 평을 남겼을 때 기업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나 진단해볼 수도 있다. 기업평판을 기업의 거울로 삼는다면 이점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한 평가, 올바른 평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걸 만들어 가는 건 확실히 잡플래닛의 몫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흐름에서 이미 기업에 대한 평가가 시작됐고 막을 수 없다면, 그 평가에 대한 태도는 기업과 리더의 몫이다. 평판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거나 의도적인 리뷰들을 덮어씌워 관리할 것인가 혹은 기업의 거울로 삼아 발전할 것인가.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분하고 짜증이 나더라도 좀 더 생산적인 쪽은 확실히 후자다.
남민영 캠퍼스 잡앤조이 기자
moonblue@hankyung.com[사진출처=잡플래닛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