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식이 소화기 등에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고지방식이 어떻게 암의 생성과 성장에 영향을 주는지는 별로 규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고지방식이 결장·직장암(colorectal cancer)의 성장을 촉진하는 생리적 메커니즘을 미국 솔크연구소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고지방식이 장(腸)의 담즙산 균형을 무너뜨려 암세포의 성장을 자극하는 호르몬 신호를 보내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담즙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암세포 성장억제의 열쇠라는 의미다.
21일 솔크 연구소가 배포한 온라인(
www.eurekalert.org))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연구소의 로널드 에번스 교수가 주도한 연구 보고서는 같은 날 과학 저널` 셀(Cell)`에 실렸다.
연구의 실마리는 APC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생쥐 실험에서 찾았다. 이런 생쥐에 고지방 사료를 먹였더니 암세포의 성장이 빨라졌다. `종양 억제` 유전자로 불리는 APC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결장암과 직장암 환자한테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내장은 쉬지 않고 일하는 기관이다. 음식물의 소화와 흡수는 기본이고, 산성 소화액(digestive acids)에 손상된 내벽도 끊임없이 재생해야 한다. 이런 때 필요한 세포를 채워주는 게 내장 안에 있는 줄기세포다.
이 줄기세포의 APC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결장암과 직장암이 생기곤 한다. 이 유전자는 세포의 분열 빈도를 제어한다. 그런데 돌연변이를 일으켜 통제력을 상실하면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면서 암으로 변하는 것이다.
또 다른 주요 발견은, 담즙산이 `파네소이드 X 수용체(FXR; Farnesoid X receptor)` 단백질을 통해 내장 줄기세포에 호르몬 신호를 보내는데 고지방 음식이 이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솔크 연구팀은 지난 40년간 담즙산이 장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연구해 왔다. 장에는 음식물 소화와 콜레스테롤·지방·지용성 영양분 등의 흡수를 돕는 30종의 담즙산이 있다.
APC 돌연변이를 가진 실험용 생쥐를 관찰한 결과, FXR 단백질을 억제하는 두 가지 유형의 담즙산이 암의 발생과 동시에 증가하면서 암의 진행을 가속했다. 여기서 담즙산 수위를 높이는 게 바로 고지방 사료였다.
내장의 손상 부위를 재생할 때 그 과정을 느린 속도로 일관되고 안전하게 제어하는 게 FXR이다. 그런데 담즙산이 FXR을 억제하면 일군의 줄기세포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DNA 손상 부위가 눈덩이처럼 쌓여 간다. `고지방 사료→담즙산→FXR 단백질→내장 줄기세포` 순으로 신호 전달 체계가 작동하는 셈이다.
고지방 식의 해로움은 다른 실험에서도 확인됐다.
선종(adenoma)이 생긴 APC 돌연변이 생쥐에 고지방 사료를 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악성 종양으로 변했다고 한다. 내시경 검사를 하면서 가볍게 떼어내곤 하는 선종은 그냥 둬도 당장은 위험하지 않다. 선종이 악성 선암 종(adenocarcinomas)으로 크려면 보통 수십 년이 걸린다.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항암 신무기` FexD 분자로 내장의 FXR 단백질 활성도를 높이는 실험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실험 쥐와 인간의 결장암 세포에 적용한 결과, 양쪽 모두 담즙산의 균형 파괴로 생긴 세포 손상에 FexD 분자가 작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에번스 교수는 "결장암이 `치료 불가(incurable)`로 여겨지는 것을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이 암의 이해와 치료에 새 지평을 연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