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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한국경제 재평가 중…韓 증시 중진국 함정 빠지나-[국제경제읽기 한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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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대외 위상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2015년 세계 11위까지 올랐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지난해 한 단계 밀렸다. 같은 기간 중 외환보유액은 7위에서 9위로, 주식시장 시가총액도 12위에서 13위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고질적인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세계 3대 평가기관이 한국과 같은 외환위기를 경험한 국가들의 위기극복 정도를 평가하는 데에는 `위기 3단계론`을 적용한다. 한 나라의 위기는 외화 등에 금이 가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다.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처럼 담보 관행이 일반화된 국가에서는 경제시스템 위기로 비화된다. 돈을 공급해 주는데 시스템 상에 문제가 생기면 실물경제 위기로 치닫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경제주체가 겪는 모든 위기는 이 수순대로 극복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국제금융시장 접근도를 높여 외화 등 유동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위기를 발생시킨 부실을 털어내야 경제시스템의 복원이 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침체된 실물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다.

한국은 위기 초기에 대규모 경상수지흑자와 외자선호정책으로 다른 위기 경험국에 비해 외화유동성을 빨리 확보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외화유동성 확보 이후 실물경기가 회복되고 경제 내에서 위기에 대한 우려가 불식될 수 있느냐 여부는 얼마나 빨리 유동성 위기를 낳게 한 시스템 위기를 치유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대부분 위기 경험국은 외화유동성 위기를 해결한 후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는 단계로 순조롭게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외화유동성을 확보한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재평가, 잦은 정책변경,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국정혼란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궤도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각료를 중심으로 조기에 극복했다고 공치사하고 있는 유동성 위기도 일부 국제금융기관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한 나라의 유동성 위기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외화유동성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위기(macro crisis)와 다른 하나는 개별 경제주체의 현금흐름상에 문제가 생기는 위기(minor crisis)로 구분된다.

한국의 유동성 위기 극복은 엄격이 따지자면 거시경제 차원의 외화유동성 위기를 카드채 발행 등을 통해 개별 경제주체의 위기로 전가시켜 놓았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진단이다. 카드채 사태가 발생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신용 불량자가 여전히 많아 개인의 현금흐름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시스템 위기와 실물경기 위기극복이 지연되면 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적인 요인들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에 따라 대처능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계 자금을 비롯한 외자 유입으로 원화 가치가 고평가되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대표적인 예다.

경제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들이 글로벌 펀드들의 차익실현으로 연결될 경우 국내외 자금들의 해외이탈로 연결되면서 그동안 극복했다고 보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금융시장에서 하나의 정형화된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위기 재귀설(crisis reflexibility)’이다.

결국 현 정부 들어 우리 경제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위기 재귀론이 대두되는 것은 「통계수치의 위기」가 아니라 정부의 경제운용체제를 중심으로 한 「사회시스템의 위기」에 연유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선행돼야 한다.


이 같은 현실진단을 토대로 현 정부는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우리 경제의 시스템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특히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출이 세계경제 환경이나 환율과 유가가 조금만 불리하게 되면 크게 감소하여 우리 경제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곧바로 위기감이 닥치는 소위 「천수답」구조를 「수리안전답」구조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땜질식 단기처방보다는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우리 상품의 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을 배양해 나가야 한다.

현 정부가 높은 국정지지도를 의식해 경제우선 정책을 예산의 조기집행 등과 같은 단기적인 부양책만을 실시할 경우 그동안 누누이 지적돼온 우리 경제의 「고비용-저효율」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 진다. 오히려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과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게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해외 진출한 기업도 우리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개혁정치이든 산업정책이든 간에 정책의 일관성과 명확한 기준이 전제가 된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과거처럼 행정규제를 추진하면서 기득권 때문에 핵심규제 사항을 풀지 못하거나, 특정기업에게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신규 사업을 허가해 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가시지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우리 기업의 경영시스템은 계속해서 위기감만 팽배해 가능성이 높다.

국민에게도 경제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하여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과소비 풍조가 만연되고 이것이 결국 우리 경제의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도 경제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토대로 소득에 맞는 경제생활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과시용 소비행위를 지속해 나간다든지,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지 하는 부화뇌동식 소비행위는 국가 전체차원에서 보면 심각한 경상수지적자를 초래해 자칫 잘못하다간 또 다른 형태의 위기가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가 실시하는 정책에 적극 지원하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최근 우리 국민이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다시 보이는 것은 현 정부가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현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을 경우 결국 소기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 나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여론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결정되어 실시될 경우 정부가 의도한 소기의 정책효과가 최대한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 줘야 우리 사회시스템이 안정될 수 있다.


<글. 한상춘/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위원(<a href="mailto:schan@hankyung.com">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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