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연기가 재밌어요. 고민을 매일 하면서 몇 가지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죠. 평소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까? 어떻게 하면 올바른 연기를 할까’ 고민해요. 그 고민이 습관이 되는 거죠. 요즘 사람들의 연기스타일이 뭔지 계속 생각해요.”
배우 김주혁의 진가가 증명됐다. 김주혁이 ‘아르곤’에서 보여준 깊이 있는 연기는 예능에서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오랜만에 브라운관에서 만난 김주혁의 매력에 시청자들은 제대로 빠졌다.
지난달 26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은 언론인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세련되게 다루고, 현실 속 상황과 오버랩 되어 방영 내내 많은 시청자들에게 회자됐다.
“이젠 시나리오 한 장만 읽어봐도 저에게 어울리는 역인지 알아요. 입에 안 붙는 대사가 있는 반면 잘 붙는 대사가 있죠. 뭐라 표현하기가 애매해요.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가 입에 착 붙었어요. 이 작품은 선택하는 데 30분도 안 걸렸어요. ‘아르곤’ 시나리오를 읽어보는데 자연스러웠어요. 한마디로 과한 부분이 없었죠.”
김주혁이 연기한 김백진은 진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인물. 김백진은 다른 무엇보다도 팩트만을 중시, 진짜 기자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까다롭고 높은 뉴스 판단 기준, 정직한 보도에 관한 집념, 겉으로는 냉정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팀원들을 보듬어주는 리더의 자세까지 워너비 기자의 표상이었다.
“김백진처럼 선봉에 서진 못했을 지라도 비굴한 사람은 못됐을 거예요. 아부를 절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굶어 죽으면 죽었지. 난 아마 일반 회사에 다녔으면 간부까지 못 올라갔을 것 같아요.”
이 때문에 후배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또한 마지막에는 자신의 실수마저 인정하며 끝까지 기자로서 신념을 잃지 않았다. 이를 보여준 김주혁은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매력을 구현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몰입도를 높였다. 담백하지만 단조롭지 않았고, 진실을 위해서라면 불같이 달려드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안타까운 건 기자들의 삶을 좀 더 알았으면 더 진하게 나오지 않았을까하는 거예요. 수박 겉핥기식의 미화시킨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드라마기 때문이라고 하면 변명 같아요. 기자를 대변하기 위해 이 드라마를 한건 아니지만 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드라마잖아요. 이 드라마를 보고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사 중 좋은 말들이 정말 많았다. ‘뉴스를 믿지 말고 각자 판단해 달라’는 대사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어요. 아마 시청자도 그 말을 듣고 와 닿지 않았을까 해요. 그리고 기자들도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렇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김주혁은 수상 소감 씬의 긴 대사와 감정을 온전히 김백진과 물아일체 되어 쏟아냈고,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긴 탄성이 한동안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김주혁에 대한 재평가가 안팎에서 이뤄지고 있다. 시청자들 역시 ‘아르곤’이 방영되는 내내 “섹시하다”, “이렇게 연기를 잘하다니”, “구탱이형 생각도 안남”, “배우는 역시 다르다” 등의 뜨거운 반응을 보여 왔던 것. 김주혁의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연기와 그가 갖고 있는 어른 매력은 ‘아르곤’이 발견한 보물이다.
“연기를 더 표현할 수는 있는데 대사를 더 지어 낼 수 없잖아요. 느끼는 만큼만 연기를 하려고 노력해요. 가끔 신 분위기 때문에 과하게 연출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시청자들이 볼 땐 재밌을 진 몰라도 저는 좀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회를 다 꿰뚫고 있진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맞는지 틀린지 확신하지 못하죠. 그게 딜레마에요. 정말 내가 느끼는 만큼만 연기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그래도 최대한 느끼는 정도만 하는 편이죠. 보통 배우하고 연출자간의 그런 싸움이 많아요. 이번엔 감독과 전혀 싸우지 않았어요. 감독이 배우가 하고 싶은 대로 연기하길 원했죠.”
김주혁은 그동안 예능에서 보여준 소탈하고 허술한 모습으로 ‘구탱이형’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만큼 친근한 매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아르곤’에서의 김주혁은 웃음기를 지웠고, 극을 중심에서 이끌어 나갔다. 8회라는 짧은 회차가 아쉬울만큼 김주혁의 매력은 `아르곤`을 중심이 됐고, 시청자들은 깊은 울림을 주는 ‘아르곤’에 빠져들었다.
“어떤 캐릭터든 처음부터 구상이 잡혀있지 않아요. 하면서 잡히는 스타일이죠.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만 맡아요. 배우는 자기 그릇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릇을 벗어나는 역할을 택하는 건 어리석은 거라고 생각하죠. 그릇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거지 얼토당토않은 역을 도전하는 건 웃기잖아요. 대사도 입에 안 붙고 행동도 어색한 걸 하면 어리석은 거죠. 그렇다고 지금에 안주하라는 말은 아니에요. 아무리 좋은 작품을 갖다 줘도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걸 선택하라는 거죠.”
늘 새로운 캐릭터를 자신만의 매력으로 소화해내는 김주혁의 감각은 ‘아르곤’을 통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이것은 우리가 그의 차기작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진제공 = 나무엑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