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위 33일 만에 사망한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정말 암살당한 걸까.
14일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죽음 의혹을 방송했다.
1978년 재위 33일 만에 사망한 263대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에 대한 암살 의혹이 제기됐다.
농부 아들로 태어나 교황으로 선출된 요한 바오로 1세는 권위적이지 않은 소탈한 모습으로 가장 인간적인 교황이라 불렸다.
그런데 요한 바로오 1세는 교황 선출 33일 만인 1978년 9월29일 교황청은 그가 사망했다는 충격적 사실을 발표한다.
당시 요한 바오로 1세가 새벽 미사에 참석하지 않자 개인 비서 존 마기 신부가 교황 침실을 찾아갔고 교황은 책을 읽다 잠든 것처럼 코에 안경을 걸치고 손에는 책을 들고 있었다고.
바티칸 상주의사인 레너드 부조네티가 시신을 확인했고 외상이 없는 걸로 보아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추정된다고 진단했다.
즉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던 요한 바오로 1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돌연사 했다는 것.
일각에선 교황의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시신 부검을 요구했지만 교황청은 교회법에서 금한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요한 바오로 1세 세신은 장례를 치은 후 성 베드로 성당에 안치됐다.
그런데 이로부터 6년이 지난 1984년 영국 작가 데이비르 얄롭이 저서를 통해 요한 바오로 1세의 암살 의혹을 제기했다.
4년 전 어느 날 요한 바오로 1세가 암살당했다는 전화를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받게 된다.
이후 그는 요한 바오로 1세의 사망 당시 상황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몇 가지 의문점들을 포착한다.
첫째, 사인 진단과 부검상의 의문점이다.
교황의 개인 주치의는 안토니오 다 로스 박사로 바티칸과 멀지 않은 곳에 머물고 있었다.
사망을 발견하자마자 주치의가 아닌 다른 의사인 레너드 부조네티를 부른 것이 석연찮았다는 것.
또 부검을 거부했지만 클레멘스 14세와 비오 8세 등 두 명의 교황을 부검한 전례가 있었다.
둘째, 교황청 발표와 교황 측근들의 의견이 달랐다고.
당시 교황 시신을 수습한 장의사는 현장에 도착한 것은 9월29일 오전 8시경으로 교황 시신엔 온기가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교황청이 9월28일 밤 11시에 사망했다고 발표한 것과 맞지 않는다고.
셋째, 수상한 사망 현장이었다.
평소 교황은 책을 읽을 때 안경을 벗는데 사망 당시 교황은 책을 들고 안경을 쓴 채 발견됐다는 점이다.
또 교황 침대에는 위급상황에 쓰이는 비상근이 있는데 심장마비에도 교황이 이를 사용하지 않았단 점이 의혹을 낳았다.
또 사건 발생 후 교황 숙소는 출입 금지됐고 임종 당시 소지품인 문서, 유언장이 봉인된 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
데이비드 얄롭은 교황 죽음 배후에 바티칸 비밀조직이 있다고 주장했다.
1978년 교황 선출 직후 요한 바오로 1세는 비리의 온상으로 불리던 바티칸 은행이 부패 정치인, 마피아 자금 은닉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바티칸 은행 총수인 마르친쿠스 대주교, 은행가 로베르토 칼비와 미셸의 비리를 파헤치고자 했다.
이 때문에 교황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데이비드 얄롭의 주장.
이에 바티칸 비밀조직은 교황이 마실 물에 독약을 탔고 교황이 사망하자 심장마비로 현장을 조작했고 중요한 문서를 가로챘다는 것.
그 것은 바로 교황이 다음 날 파면하려 했던 사람들의 명단으로 그 안에 마르친쿠스 대주교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또 데이비드 얄롭은 요한 바오로 1세 살해 음모가 계속 있었다고 주장했다.
니코딤 대주교가 교황을 단독접견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이 또한 교황을 노린 범죄였다는 것.
이에 요한 바오로 1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점점 커져갔다.
이후 바티칸 마피아 일원인 로베르토 칼비가 런던에서 피살됐고 미셸 신도나 역시 감옥에서 독살 당한 채 발견돼 이들의 죽음이 교황 사망 비밀을 숨기기 위한 것이란 의문이 제기됐다.
급기야 사람들은 교황 사망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교황청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교황 서거 38년이 지난 지금까지 다른 공식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