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영화배우 김혜정이 19일 오전 교회에 새벽기도를 가는 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
1941년 경남 마산에서 7남매 가운데 넷째로 태어난 김씨는 부친이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되면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김혜정은 가끔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극장을 찾을 정도로 한국영화를 좋아했고, 학교 예술제에서 연기나 춤을 선보이며 일찍이 배우로 성장할 면모와 `끼`를 보였다.
배우가 되기로 한 김씨는 서울에 있는 영화감독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쓴다.
마침내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서울로 상경해 1958년 이만흥 감독의 영화 `봄은 다시 오려나`로 데뷔한다.
영화는 비록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충무로에 김혜정이라는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969년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비련의 섬`(1958), `육체의 고백`(1964), `아내는 고백한다`(1964), `죽은 자와 산 자`(1966) 등 128편의 영화에서 때로는 애처롭고 때로는 도발적인 매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는 연기활동을 하는 동안 대중매체로부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배우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김지미, 조미령 등 아담하고 고전적인 외모의 여배우가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반면 김혜정은 `100만 불짜리 (몸매의) 균형을 지닌 배우`, `육체파`라는 별명을 얻으며 제의를 받는 배역마다 대부분 `글래머`, `육체파`라는 설정이 따라붙었다.
또 그에 대한 언론 기사들은 성적 매력과 남자들과의 사생활을 다루는데만 집착했다.
배우로서 연기로 평가받기보다 지나치게 육체적인 관능을 강조하는 역할들로 소비된 김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을 만나면서 1969년은막을 떠난다.
당시 그룹 사장이었던 최 전 회장과 아들을 낳고 아들이 돌이 되던 1971년 결혼식을 올린다.
이들은 연예인·재벌 1호 부부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후 딸까지 얻은 김혜정은 재벌가의 며느리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 평온한 삶을 사는 듯했다.
그러나 몇 년 지나지 않아 최 전 회장과 파경을 맞는다.
영화사연구자 한미라는 "배우 김혜정이 2000년대에 등장했다면 대중매체와 관련해 훨씬 `받아들일 만한` 스타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 누구보다 한국영화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성모장례식장 1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오는 21일 오전 6시4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