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강석우 딸 강다은, 조재현 딸 조혜정, 이경규 딸 이예림(사진 = SBS) |
SBS ‘아빠를 부탁해’에는 네 명의 아빠와 딸들이 평소에 소원했던 관계회복에 나선다. 가족 예능 가운데 새로운 소재를 잘 발굴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힐링 코드와 솔루션 프로그램의 성격이 함께 결합돼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소재는 그동안 유행했던 아빠와 아이의 관계에서 아이를 성인이 된 딸로 좁혔다. 그런데 만약 아빠와 아들이었다면, 화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녀의 코드가 있을 때 예능은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딸은 여성 시청자들의 감정이입 대상이 되기 쉽다. 이 때문에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런데 다른 육아 예능과 같은 점이 있었다. 아빠들은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권위를 부리지만 실제로는 잘못하거나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참회를 할수록 인정을 받는다. 물론 아빠 역할을 잘했을수록 주목을 덜 끌었다.
그런 면에서 배우 조재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자신은 가장 정상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아빠들보다 가장 못했다. 이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회복의 계기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치기도 했다. 한편으로 가장 못해온 그의 말은 맞았다. 대한민국 아빠들은 모두 조재현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빠의 자책을 유도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한계이기도 하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은 관찰 카메라에 담긴 내용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아빠들이 왜 가정에 관심을 덜 기울이게 되는지 담아내지 못한다. 아빠들이 집에서 보이는 언행은 주로 집밖의 일 때문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렇다면 아빠들이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잘 하려면 그들의 일상을 모두 파악해야 진정한 원인을 찾아내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관찰 카메라가 담아야 하는 것은 아빠들의 일터일 수 있다.
tvN ‘미생’에서 오상식 차장(이성민 분)은 빈번하게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가고, 아내는 그를 허구한 날 술에 찌들어 온다고 타박한다. 하지만 그는 왜 술을 먹게 되는지 회사 일을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가 기껏 하는 일은 가끔 치킨을 사들고 가는 일뿐이다. 주말이 되면 소파에 누워 졸기 바쁘다. 이런 장면만을 보면 오상식 차장이 좋은 남편, 나아가 괜찮은 아빠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애들이 커갈수록 좋은 아빠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그는 멋진 중간관리자이다.
SBS 특집드라마 ‘인생추적자 이재구’에서 남편의 과로사에 대한 산재판정을 받기 위해 심사를 기다리던 아내는 증거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 영상에는 남편이 좋지 않은 몸 상태임에도 억지로 끌려간 술집 접대 현장에서 모욕을 당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아내는 돌아나오면서 흐느낀 채 노무사에게 말한다.
“남편을 몰랐네요. 몰라도 너무 몰랐네요. 남편이 전화를 왜 안 받았을까요. 내가 위로가 안 된다고 판단했겠지요.”
아내는 연락이 안 되는 남편이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자책했다. 퇴사압박에 시달렸던 남편은 아내와 딸을 생각해 무리한 출장을 수용했고, 이 때문에 결국 야간 출장길에 사망에 이른다. 이런 점을 보면 열심히 일하기는 했지만, 좋은 남편이나 아빠의 역할을 했을지 의문이다. 물론 그 아빠도 자신을 자책했을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그가 하는 일이 평탄했어야 할 것이다.
물론 밖의 일로 핑계를 대고 아빠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빠들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을수록 시청률도 더 높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스케줄이 유동적인 연예인들의 삶과 경직적인 직장인 아빠들의 삶을 같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정말 필요한 힐링이나 솔루션은 직장인들이나 나아가 자영업을 하는 아빠들의 사례일 것이다. 관찰카메라 방식은 한 공간에서 나타나는 지엽적인 언행만을 통해 문제를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할 때, 오히려 본질을 왜곡할 수 있음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일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동아방송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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