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정은이 SBS ‘매직아이’에 출연해 장기하에게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발언하고 있다.(사진 = SBS) |
곽정은이 ‘매직아이’에 출연해 장기하에게 “침대 위가 궁금한 남자”라고 하고, 로이킴에 대해선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실력이 궁금하다”고 했다는 이른바 19금 성희롱 논란에 대해 강한 항변의 글을 올렸는데, 그게 또 비난을 사고 있다. 왜 대중은 곽정은의 해명에까지 비난을 퍼붓는 것일까?
곽정은은 항변글에서, 자신이 과거 섹스기사를 썼던 것 때문에 소개팅남이 불편해했다는 추억담부터 꺼냈다. 결국 이번에도 야한 이야기로 욕망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엄숙주의에 찌든 사회가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적 욕망의 표현) 그것은 더러운 일도 아니고, 감히 상상해서는 안 되는 일도 아닌”, “섹스하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갖는 감정의 표현”, “섹스가 더러운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치”, 이런 표현들에서 알 수 있는 건 그녀가 이번 일을 ‘솔직한 욕망 대 엄숙주의’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단지 성적인 욕망에 대해 발언했다는 이유로 매도”당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직업적 표현이 폄하되는 희롱을 당하고 있고, 이렇게 “건강한 욕구의 분출”이 금지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여자라서 더욱 차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그것도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감히 성적 욕망과 관련한 발언을, 한 멋진 남성에게 하는 일이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을 것이니까.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또 어디 있을까.”
한 마디로 여자라서 욕을 먹는다는 소리다.
또 성희롱 논란에 대해선, 그것은 듣는 사람의 느낌이 중요한 것인데 당사자인 장기하가 문제제기를 안 했으므로 성희롱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방송수위의 지적에 대해선 제작진의 편집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길고도 다양하게 조목조목 항변했음에도 왜 비난이 더욱 커진 것일까? 그것은 곽정은의 긴 항변이 정작 핵심을 빗겨갔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그렇게 복잡한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아래와 같다.
만약 남자 출연자가 걸그룹에 대해 논하면서 “침대 위가 궁금한 여자”,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실력이 궁금하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방송 중에 남자가 여자에게 “건강한 욕구를 분출”하면 어떻게 될까?
▲ 곽정은은 로이킴에 대해선 “어리고 순수하게 보이는데 키스실력이 궁금하다”고 밝혔다.(사진 = SBS) |
과거 윤종신이 여자를 음식에 비유했다가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사과한 일이 있었다. 직접적으로 성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음식 비유는 성적 대상화라며 아직까지 비난을 받고 윤종신은 계속 사과한다.
남자가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면 추잡한 성희롱이고, 여자가 남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표현하면 건강하고 쿨한 것일까? 남자의 성적 발언을 질타할 땐 정당한 사회비판이고, 여자의 성적 발언을 질타하면 ‘엄숙주의 꼰대짓’이 되는 걸까?
바로 이 지점이다. 평소 여성계에선 남자들이 여자를 방송 중에 조금이라도 성적 대상화하면 질타를 가해왔다. 과거 ‘세바퀴’에서 현아가 골반춤을 출 때 옆에서 웃는 표정으로 지켜본 남자 패널들이 욕을 먹었었다. 반면에 여자 패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 출연자 몸에 손을 대거나 옷을 벗겼다. 바로 이런 불균형에 누리꾼들이 불만을 가져오던 차에, 곽정은이 ‘앞서 가는 지성녀’ 같은 느낌으로 당당하게 남자를 성적으로 묘사하자 폭발했던 것이다.
그런데 곽정은이 그런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나서 이 사안을 일반적인 엄숙주의, 위선, 허위의 차원으로 몰자 대중의 감정이 더욱 불편해졌다. ‘남자는 못하는 말을 왜 여자는 자유롭게 하는 것이냐’란 지적이었는데, 곽정은이 누리꾼을 ‘여자가 감히 성적 욕망을 말한 불경’을 징치하는 조선 사대부처럼 꽉 막힌 사람들로 몬 것도 더욱 악감정을 부채질했다.
제작진의 편집을 탓한 대목도 그렇다. 예능에서의 문제 발언으로 비난 받은 연예인은 언제나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해왔지, 자신의 발언을 잘라버리지 않은 제작진을 탓하진 않았었다. 실제로 제작진의 잘못이 크긴 하지만 그런 얘기는 제3자가 해주는 것이지 문제 발언의 당사자가 해선 일이 더 커질 수 있다. 제작진에게 일을 전가해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이다. 대중정서가 그렇다.
그동안 남자들이 여자에게 극도로 조심할 것을 요구당하는 사이에 여자들은 마음껏 꿀복근을 ‘건강하게’(?) 탐하는 자유를 누려왔다.
이번 논란은, 앞으론 여자들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남녀에 대한 이중잣대를 그동안은 여자들이 주로 지적해왔지만 앞으론 달라질 테니까.
분출하려면 다 같이 분출하고, 조심하려면 다 같이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곽정은 씨처럼 분출하자는 입장이다. 다 같이.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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