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패션`의 시대. 그러나 사람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유행에 맞고 저렴한 옷을 사서 한 철 입고 빨리 새 옷을 사 입는 게 나을지, 아니면 비싸지만 대대손손 물려입을 옷을 살 지를 고민하는 이들이 은근히 많다. 하지만 이 고민은 한 쪽을 택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떤 옷은 비싸게 사고도 대대손손 물려입지 못하고, 또 어떤 옷은 싸게 사고도 `잇 아이템`으로 몇 년 동안 등극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짧게는 `오늘 뭐 입지`에서 길게는 `어떤 게 내 스타일이지`까지 옷에 대한 사람들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더메이드(주문제작)의 부활`이 답이라고 외치고 있는 이가 있으니, 프랑스 파리 유학파인 30대의 젊은 디자이너 이명제이다. 컬렉션과 주문제작 중심 브랜드 `아뜰리에 러브(Atelier love)`를 이끌고 있는 이명제 디자이너는 앞서 언급한 고민의 해답이자 자신이 걷는 길인 `주문제작`은 결코 죽지 않는 시장이라고 확신하며 오늘도 옷을 만들고 있다.
★명동-이대에 번성하던 오더메이드, 그 후계자
`맞춤`이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만의 옷`을 만나 본 적이 없다. 먼 옛날 교복을 맞췄거나, 드물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해 입은 신부를 가끔 볼 수 있는 정도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서울 명동-이대 등에 크고 작은 `의상실` 등이 번성하며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의 스타일 찾기를 도왔다.
이명제 디자이너는 "내가 그 시대 `의상실`의 후계자이고자 한다"고 말했다. "`맞춤복은 엄청 비쌀 텐데, 누가 그런 걸 해 입어?`라고 많이들 생각하실 거예요. 하지만 은근히 그렇지가 않아요. 한 번이라도 맞춤복을 해 본 사람은 그 매력에 중독되고, 1년에 한 번씩이라도 꾸준히 맞춤을 하다 보면 자기에게만 딱 맞는 컬렉션이 생겨나게 되죠. 그것들을 반복해 입으면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해요."
그는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2009년 브랜드 `LOVE`를 런칭한 뒤 처음에는 여타 디자이너들처럼 서울 강남의 트렌디한 편집숍에 아이템을 납품하고, 온라인 쇼핑몰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브랜드를 알려갔다. 하지만 곧 그러한 활동을 완전히 접었다.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그런 식으로 하면 대체 누가 옷을 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저 팔리고 나면 돈만 들어오죠. 그런 식이 아니라, 손님 하나하나를 만나 가면서 거기에 맞는 옷을 만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가 만난 손님 중에는 셔츠부터 시작해 바지, 코트, 재킷까지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자신만의 옷장을 꾸민 경우도 있다. 한 벌 만드는 데 보통 한 달씩 걸리기 때문에 그저 산 옷보다는 훨씬 더 애정을 갖게 된다고. 시간만 많이 드는 게 아니다. 손님과의 친밀도 또한 옷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단순히 몸에 맞는 옷을 만든다는 생각으로는 안 돼요. 그 사람과 많이 친해져야 해요. 한 번은 어떤 큐레이터 일을 하시는 여성분이 오셨는데, 그저 심플하고 사무적인 느낌을 원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들은 대로 했더니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인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SNS를 조사했더니, 인상과는 달리 내면에 튀는 면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그제서야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있더군요."
입소문만으로 `영업`이 쉽지는 않다. 온라인 판매를 접은 대신 블로그를 강화해 온라인에서의 소통에 나서고 있고, 최근에는 몇 차례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 끝에 롯데백화점 창원점에 입점한 상태다. "여전히 디자이너에게 최고의 매출을 주는 곳은 백화점이에요. 여기를 시작으로 계속 백화점에서의 파워를 늘릴 생각입니다." 백화점 매장에 있는 옷은 살 수도 있고, 원한다면 매장에서 맞춤 제작을 의뢰할 수도 있다. 늘 걸려 있는 옷을 사기만 했던 이들에게는 신기한 느낌이다.
★고교 때에야 `예고`의 존재를 알 만큼 느렸죠
1979년생인 이명제 디자이너는 프랑스 파리의상조합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바로 프랑스로 떠났다.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흔한 경우는 아니다. 그의 과거를 살짝 물었다.
"원래 어렸을 때는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고교 때에야 `예고`의 존재를 알 만큼 정보가 느렸어요. 그런데 고교 때 제2외국어로 불어를 했는데, 불어가 그렇게 좋고 패션 전공이란 생각을 하기 이전에 프랑스에 호감이 가더군요. 그래서 `그냥` 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반대하던 부모님도 그가 고교 졸업 뒤 군대를 가서 나올 때마다 "프랑스에 간다"고 한 결과 `세뇌`되어 그의 프랑스 유학을 찬성하게 됐다. 그는 군대에 가기 전에는 잠시 미용학원에서 미용 기술을 배울 만큼 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남자 나이 20대 초반이라 정말 자아형성이 덜 돼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파리에 가서 혼자 집 구하고 어떻게든 살다 보니 철이 많이 들었어요. 힘든 점도 있었지만 프랑스가 내 살 곳이라 생각할 만큼 정말 좋아서, 앞으로도 쭉 거기서 살아야지 했지요. 그런데 2009년에 한국에 들어와 몇 달만 여기서 해 보자 했던 게 지금 여기까지 왔네요."
그는 `제2의 고향`인 파리에 다시 갈 계획도 갖고 있다. "한국에서 계속 좋은 결과를 쌓아가다가 나중에는 파리에서 맞춤복을 전문으로 하는 동양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요. 오더메이드는 나라를 막론하고 정말 좋은 시장이거든요. 남성 맞춤복보다 여성 맞춤복은 희소성이 있어서 더 가치가 크고요. 파리와 일본 등지에 매장을 갖고 있는 우영미 디자이너가 롤 모델이에요."
★의상은 `해프닝`이 아닌,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파트너
`아뜰리에 러브`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연예인 협찬이나 가수의 앨범 커버 스타일링 작업 등도 그에게 들어왔다. 눈길을 끄는 작업도 몇 건 있다. 그러나 이명제 디자이너는 "한 번 그저 협찬하고 잠시 노출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옷이 노출됐을 때 사람들은 옷이 아니라 사람을 봐요. 그리고 옷이 눈에 띄게 빛나더라도 어디 제품인지 알리는 작업이 받쳐지지 않으면 별 의미 없어요. 저는 그런 식이 아니라 그 옷을 입은 사람이 100% 만족하는 옷을 만들고 싶어요."
배우에게 최고의 자리인 레드카펫 드레스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요즘 한국에서도 큰 행사의 레드카펫이 열릴 때마다 화제가 되죠. 그런데 디자이너로서 레드카펫에서 주목받는 드레스를 보면, 드레스가 화제가 된다기보다 `해프닝`이 화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건 그 옷을 만든 디자이너나, 배우나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듯해요. 디자이너라면 그 사람에게 맞는 스타일을 완벽하게 찾아 줘야지요. 배우의 느낌과 드레스가 조화됐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데 해프닝으로 화제가 되는 건 부끄러운 일 같아요."
그는 22일 열린 제3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 레드카펫에 선 영화 `화려한 외출`의 주연배우 김선영의 드레스를 디자인했다. "배우의 느낌과 드레스가 완벽하게 어울려서 최대한 빛날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옷이 잘 나와서 화제가 돼야지, 옷이 잘못 나와서 그걸로 화제가 돼선 안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디자이너가 되기는 쉽지만, `형용사가 많이 붙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이명제 디자이너의 말이다. "사실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만들기만 하면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디자이너는 어떻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그런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브랜드를 몇 십년씩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한국에 와서 처음에는 잠시 `뻥 뜰 것 같다`는 코리안 드림을 품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모든 선배들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제가 생각하는 주문제작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명제 디자이너는...
-1979년생, 파리의상조합학교 졸업
-2006년 가스파드 유케비치 근무
-2007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근무
-2009년 브랜드 `LOVE` 런칭, 서울 한남동에 쇼룸 오픈
-2012년 브랜드 `LOVE2` 런칭, 서울 압구정에 `아뜰리에 러브(Atelier love)` 쇼룸 오픈
-2012년 KBS 드라마 `각시탈`에서 연기자 김정난(이화경 역) 의상 디자인
-2012년 SBS 드라마 `패션왕`에서 연기자 이제훈(정재혁 역) 의상 협찬
-2012년 한국섬유신문 패션대상 신인 디자이너 부문 수상
한국경제TV 이예은 기자
yeeuney@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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