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잇따른 양적완화에도 높아지는 세계경제 ‘경착륙’ 우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지 꼭 4년이 지났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사태가 숨통이 트일 무렵에 시작된 유럽위기가 2년 반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위기 이전보다 영향력이 더 커진 심리요인과 네트워킹 효과로 긍(肯·긍정)과 ‘부(否·부정)’, ‘부(浮·부상)’와 ‘침(沈·침체)’이 겹치면서 위기상시체제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2009년 2분기 이후 회복세를 보이던 세계경제도 꼭 3년이 되는 시점에서 경착륙(hard landing)에 빠지느냐의 임계상황에 놓여 있다. 올 2분기 이후 미국, 중국, 독일 등 중심국의 제조업 경기 둔화세가 역력해 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움직임이 더 주목되는 상황이다.
세계경제 입장에서는 경착륙은 아직까지 ‘우려’ 성격이 짙지만 하지만 미리 반영해야 할 기업경영 입장에서는 분명히 ‘리스크’다. 이 때문에 각국은 거시경제기조를 ‘성장’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경기부양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계속된 위기로 정책여지가 바닥이 난데다 각국 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효과가 얼마나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모든 정책은 정책당국의 ‘신호(signal)’대로 정책수용층이 ‘반응(response)’해야 의도했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리먼 사태에서 비롯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비상국면에서는 이 메커니즘이 잘 작동되느냐 여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작동되지 않는다면 위기극복은 그만큼 지연되고 세계경제는 경착륙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최근 주요국 경제를 보면 1990년대 초반 일본경제가 5대 함정에 빠질 초기 단계에 나타났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경착륙에 빠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유럽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잘 버티어 왔던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국 경기가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책당국자에 대한 믿음은 크게 떨어지는 추세다.
이 상황에서 선진국 기준금리는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미 유동성이 너무 많이 풀려 추가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한다 하더라도 경기회복에 별 도움이 안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것이라는 시각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갈수록 글로벌 금융사들은 잠재부실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유럽 금융사들은 외부 긴급수혈로 연명하는 상황이다. 선진국 재정수지는 갈수록 적자폭이 확대되고 있고 국민들의 빚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이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예측기관들도 직전 전망치의 잉크가 채 굳기도 전에 또 다른 전망치를 내놓기에 바쁘다.
특히 그리스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이미 ‘좀비 위기국’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지난 2년 반 동안 몇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았음에도 국민들은 개혁과 구조조정을 통해 고통을 분담하기 보다는 같은 상황에 처해 금 모으기를 했던 한국 국민과 달리 오히려 금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벌어지고 있다.
모든 경제현상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통용된다. 유럽 국가처럼 무늬만 회원국(bad apples)과 건전한 회원국(good apples)을 ’통합‘이라는 한 바구니에 담아 놓으면 건전한 회원국들도 썩는다. 이미 유럽위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현재 유로랜드 회원국이라 하더라도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무늬만 회원국’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 경제에 경착륙 우려가 제기되자 이미 올해초부터 선진국을 중심으로 ‘부양’쪽으로 선회되기 시작한 각국의 거시경제기조가 갈수록 뚜렷하다. 미국은 지난해 9월에 발표됐던 일자리 창출 위주의 재정정책(일명 오바마 경기부양책)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꼭 1년 후인 올 9월에는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도 경기침체의 주범은 엔고를 저지시키기 위해 약 10조엔 규모의 추가적인 자산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전통적으로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은 두 차례에 걸쳐 각국 기준금리 인하와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추진한 가운데 무제한 국채매입 방안을 발표했다.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도 기준금리를 일제히 내리고 있다.
이번 각국의 부양책에서 눈에 띠는 것은 단순히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 창출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점이다. 올 6월 멕시코에서 열렸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끝나고 채택된 ‘로스카보스 공동선언문’에 일자리 창출 위주의 성장정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기부양책이 성공하려면 재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시장과 시스템에 많이 의존하는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이미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세계경제를 경착륙에 빠지게 할 변수, 즉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도 많다. 티핑 포인트란 어떤 것이 균형을 깨고 한순간에 전파되는 극적인 순간을 이르는 말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경제현안이 우려되다가 실제로 발생하면 그 순간에 경착륙에 빠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 중에서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갖고 있는 티핑 포인트가 문제다. 미국은 재정절벽(fiscal cliff)에 대한 우려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말로 예정된 연방부채한도 확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규모 재정삭감은 불기피하다. 미국경제가 이 상황을 맞을 경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3차 양적완화 정책 추진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글로벌 환율전쟁도 변수다. 각국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평가절하는 대표적인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각국 간 협조가 긴요한 상황에서 경쟁적인 평가절하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이기주의로 나아간다면 세계경제가 글로벌 증시는 각각 경착륙, 제2 리먼 사태를 넘어 대공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올 2분기 성장률이 7%대 초반으로 떨어지자 금리인하 등을 통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극복해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경제의 역할이 컸었다. 경착륙된다면 `최후 보루(last resort)`까지 깨진다면 상실감까지 겹쳐 의외로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국내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앞으로는 예상되는 변수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시점이다. 리스크를 과도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으나 막상 이런 리스크가 닥치면 기업경영과 투자에 커다란 혼란에 빠진 경험이 많다. 그 어느 때보다 기본과 균형을 중시하면서 수시로 발생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시나리오 경영 및 투자기법과 상시적인 위기관리체제를 잘 구축해 놓아야 한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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