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았다. 신년사로 살펴보는 관가와 재계의 공기에는 비장미가 흐른다.
AI라는 키워드는 제법 익숙하지만, 그 존재감은 1년 전과 비할 데 없이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새해 정부 예산을 '여야가 합의한 AI 시대의 첫 예산안'이라 명명했고, 배경훈 부총리 겸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기본사회, 풀스택 K-AI 등의 키워드가 가득한 신년사를 내놓으며 'AI 3대 강국(AI G3)'을 향한 강력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재계 기업인들 또한 약속이라도 한 듯 AI 도입을 넘어 기업 경영과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AX(AI 전환, AI Transformation) 완수를 입 모아 언급했다.
AI의 신선함과 유창함을 호기심 갖고 탐색하던 허니문 기간은 딱 2025년까지였다. 가트너(Gartner)는 '2026년 10대 전략 기술 트렌드(Top 10 Strategic Technology Trends for 2026)'에서 AI가 더 이상 수동적 도구가 아님을 천명하며 '2028년까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의 33%가 에이전틱 AI(Agentic AI)를 포함'할 거라 예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1% 미만에 불과했던 이 수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변곡점이 바로 올해, 2026년이란다.
국내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다. CIO Korea의 '2026 IT 전망보고서' 내 최근 서베이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63%가 2026년 최우선 투자 영역으로 '생성형 AI 및 AI 에이전트'를 꼽았으며, 응답자의 절반이 올해 가장 주목 받을 유망 기술로 'AI 기반 업무 자동화(AIOps/Hyperautomation)'를 지목했다.
AI, '말(言)'에서 '말(馬)'로 진화하다
그저 '말(言)' 잘하는 도구인 것만으로도 신통했던 AI가 바야흐로 발로 뛰며 일하는 '말(馬)'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한해 나는 기업의 AX를 위한 AI 플랫폼을 만드는 플렉스팀, 즉 현장 최전선에서 모든 서비스의 첫번째 테스터가 되어 그 변화를 생생히 목도해왔다.
초기의 사내 챗봇이 "우리 회사 연차 규정이 뭐야?"라는 질문에 규정집을 찾아 읊어주는 도구였다면, 지금의 기업용 AI는 한 차원 나아간다. “나 이번 금요일에 풀 연차내도 돼?”라고 물으면, 내 잔여 연차일수와 소속 조직의 조직장 및 동료들의 일정, 그리고 회사의 규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부를 판단, 참고할만한 정보를 알려준다.
즉,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고 요약하는 단계를 넘어 나의 상황과 조직의 맥락(Context)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돕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판단의 다음 스텝은 행동이다. 그날따라 부재자가 많아 오후 두시부터 반차만 등록해달라고 하면 실제 워크플로우에 따라 연차를 내고 승인을 받아 알람을 보내온다.
하지만 AI가 이렇게 사람처럼 판단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건 역설적으로 기업용 AI를 도입할 때 사람 채용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연봉협상 시즌이 다가오는데, OO 직무의 평균·최고·최저 연봉을 알려줘. 그리고 이들의 작년 평가 결과에 따라 최적의 연봉 협상선을 도출해줘."라는 지시를 보상 담당인 HR 리드가 내렸다면 응당 답변을 줘야하지만, 내가 내렸는데 답변을 해주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니까.
실패 없는 AX의 조건
딜로이트(Deloitte)는 'Tech Trends 2026' 보고서에서 가트너의 예측을 인용하며 '2027년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가 실패할 것'이라 경고했다. AI의 기술력 자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개인이 쓰는 AI와 달리, 조직이 쓰는 AI에는 꼭 갖춰야 할 조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딜로이트는 그 실패의 핵심 원인으로 '데이터 아키텍처의 제약(Data architecture constraints)'과 '거버넌스 및 통제 프레임워크(Governance and control frameworks)의 미비'를 꼽는다.
데이터가 사일로에 갇히면 AI는 맥락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적 응답기가 될 뿐이고, AI의 접근 권한을 통제할 거버넌스가 없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보안 사고라는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물론 실패를 회피할 방법은 있다.
첫째, 데이터를 축적할 단일 진실 공급원(SSoT)부터 마련해야 한다. 데이터가 막힘없이 흐르고 질서 있게 연동되는 SSoT 환경 위에서만 AI는 비로소 조직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아무렇게나 흩어진 지식들을 체계적으로 꿰어 연결하는 것만이 AI가 언제든 참조할 수 있는 '기업의 두뇌(Corporate Brain)'를 만드는 기본이다.
둘째, '관계를 아는 상태'에서만 인가(Authorization) 여부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아무리 아는게 많고 일이 빠른 동료라도 내 연봉이나 평가 결과를 다른 동료들에게 막 떠벌리면 다 무슨 소용인가. AI가 기업의 내밀한 데이터를 다루는 에이전트가 될수록, 어떤 직무/직급/직위를 가진 사람이 어떤 데이터에 얼마큼 접근할 수 있는지를 조직 발령에 따라 실시간으로 자동 통제하는 '관계 기반 접근 제어(ReBAC)'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적토마에 올라타려면 '고삐'부터
결국 AI라는 적토마에 안전하게 올라타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은 화려한 엔진에 앞서 단단한 고삐다. 우리는 이것을 'HR Driven AX'라 명명한다. 사람과 사람, 조직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HR 데이터야말로 AI가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자 통제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AI, 너 내 동료가 돼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했던 연재를 마친다. 그 외침이 더 이상 제안이나 권유가 아닌, 이미 현실이 되고 있는 까닭이다. 2026년은 AI가 단순 생산성 도구를 넘어, 우리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고 성장을 견인하는 '진짜 동료'로 자리 잡는 원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동료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데이터가 질서 있게 흐르는 SSoT라는 탄탄한 ‘트랙’ 위에서 ReBAC이라는 정교한 ‘고삐’를 쥔 채 함께 달릴 때 비로소 AI는 우리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붉은 말의 해, AI는 달릴 준비를 마쳤다. 남은 건, 우리가 그 고삐를 단단히 쥘 준비가 되었느냐는 물음뿐이다.
송지현 님은 가장 레거시한 조직인 국회에서 가장 테크-싸비(tech-savvy)한 조직인 'HR 기반 AI 플랫폼' 스타트업 플렉스(flex)로 자리를 옮겼다. 이질적인 두 직장에 뛰어든 이유는 다르지 않다. 노동 문제를 해결하고,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고픈 의지 때문이다. 여전히 생경하지만 이미 삶 속에 깊이 들어온 AI와 사람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일터를 그린다.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