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엔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고 무엇을 더 증명해야 하는지. 그러나 성악가 베이스바리톤 길병민(32)에게 커리어의 좌표를 묻는 일은 이제 의미가 없다. 그는 "어디에 와 있단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애초에 정해진 길을 따라온 삶이 아니라 없던 길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지난 7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최의 신년음악회 무대를 앞둔 그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이날 무대에서도 정통 성악이 아닌 드라마 OST 곡을 불렀다. 서울대 음대 수석졸업에 영국 코벤트가든에서 엘리트 성악가 코스를 밟다가 크로스오버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5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의 노래 궤적은 가곡이었다가, 뮤지컬이기도 했다가, 트로트까지 전방위로 넓어졌다. 정부 주최 공연에 초대돼 KBS교향악단의 연주에 맞춰 대중음악을 부를수 있는 성악가가 된건 그 덕분이다.

"서른 이전까지 강박이 있었어요. 완벽한 나의 모습을 그리며 이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했죠." 뮤지컬 공연과 트로트 방송으로 대중에게 더 알려지면서 서른을 넘긴 그는 이후 자신의 관점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더 많이 서는 무대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 수 있는 무대인지를 생각하며 공연에 참여해요. 외형적 성공보다 내공, 경험 그리고 제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이 될지를 생각하면서요."
노래하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길을 만들다
길병민의 시작은 전형적인 클래식 음악 코스와 거리가 멀다. 다섯살에 노래를 시작했을 때 그의 꿈은 아이돌 가수였고 한 때는 뮤지컬 배우를 선망했다. 그의 인생 첫 무대는 동요대회였다. 무대에 섰을 때 다정했던 어른들(심사위원)이 갑자기 날카로운 얼굴로 자신을 관찰하고 카메라가 그 모습을 찍는 것에 분노를 느꼈다. 그는 태생적으로 평가와 비교의 구조에 익숙하지 않았다. 노래하는 행위는 좋았지만, 순위를 매기고 줄 세우는 방식에는 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성악의 세계에서조차도 똑같았다.
전공한 성악은 목적지가 아니라 훈련의 방식이었다. "성악은 주춧돌이에요. 저는 지금도 퍼포머가 되는 게 좋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게 행복해요. 클래식 성악가로서 공공연하게 활동하는 미래를 처음부터 상상했던 것은 아니에요."
성악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한 끗 차이를 두고 평가받고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욕망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반면 뮤지컬과 트로트 무대에서는 자유를 경험했어요. 리그가 열려있었고 관객은 음악을 즐기는 행위에 반응해주시더라고요. 이게 문화예술의 본질이 아닌가, 그렇게 깨달음이 왔습니다."

다방면으로 튀는 그의 여정은 종종 오해를 불러왔다. "왜 트로트를 부르냐", "왜 뮤지컬 공연에서 노래하느냐" 혹은 반대로 "왜 성악가인데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느냐"는 수많은 질문들이 그에게 따라왔다. 그러나 그는 담담히 말했다. "툴루즈 국제 콩쿠르(2016)에서 우승한 뒤 10년동안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상을 탔어요. 10년 넘게 랭커로 살아온 시간이 제게 있어요. 성악의 세계가 주는 압박과 소진을 누구보다 알기 때문에 '이제는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대로 실행한 것 뿐이에요."
장르를 넘나드는 선택은 외도나 도피가 아닌 회복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노래하기 좋아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도 했다. "더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일에도 사명감을 느껴요."
도착지 없는 길을 탐험하도록 이끌어준 조수미
그가 존경하는 예술가는 여럿이지만 그중 이정표에 가까운 인물은 소프라노 조수미다. 장르와 매체의 경계를 넘어 대중과 소통해온 인생 선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길병민은 조수미와 크리스마스 투어를 함께했다. "세상이 우러러보는 커리어를 가진 분이 아직도 관객 한명 한명의 감동 지점을 고민하며 밤을 새는 모습이 정말로 인상적이었어요." 길병민과 알고 지낸지 10년이 된 조수미도 특별한 조언보다는 태도로 길병민을 이끈다. 조수미와 인연은 2015년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에서였다.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그친 참가자 길병민에게 심사위원이던 조수미는 "나랑 음반낼래?"라고 제안했다. 길병민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음악계 대선배의 따스함을 느꼈고 자신을 더 갈고 닦는 계기로 삼았다. "선생님은 지금도 항상 제게 '네가 가는 길이 정확해, 너는 아직도 보여줄게 더 많아'라고 말씀해 주세요. 이 말이 새해를 맞는 다짐이 됐어요."

지난 2024년 여름을 기점으로 그는 잠시 리사이틀을 접었다. 수년간 매달 이어온 레이스를 쉬고 유럽과 미국, 중국과 일본 등지를 마음껏 여행했다. 한국에서는 체감하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의 수요와 제안을 세계 곳곳에서 마주했다. 낯선 사람과 빠르게 친해지고, 온기를 더하는 역할을 자처해왔던 성품도 해외에서는 오히려 더 크게 평가됐다.
"제가 고갈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밖에 나와보니 오히려 성악가에 대한 쓰임새가 정말 많더라고요!" 넓은 세상을 보고 돌아온 뒤 커리어나 직업적 목표에 대한 집착은 옅어졌다. "도착지가 없는 길을 가보는 것 그 자체가 의미가 됐어요. 잠깐 반짝였다 사라지는 사람이 아니라 계속 불타오르는 사람으로 살려고요."
물론 그도 사람이다. 그래서 온라인 상의 비방에 흔들릴 때도 있다. 스스로를 가장 칭찬하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고백도 함께 였다. 그럼에도 그는 엄청난 회복탄력성을 자랑한다. 다양한 상황에 자신을 내던져가며 축적한 경험은 하나의 결론이 됐다. 길병민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장르란 것.
올해에는 매월 리사이틀을 여는 장기 프로젝트를 재개한다. 스토리텔링과 연출을 결합한 실험 등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구상 중이다. 인터뷰 말미, 그는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끝까지 존재하겠습니다. 최선의 방법으로 쓰여질 때까지."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