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야심 찬 전시 라인업을 선보였다. 중심에는 영국 현대 미술가 데이미언 허스트의 아시아 첫 대규모 회고전이 있다. 지난해 역대 최대 관람객(346만 명)을 기록한 미술관 흥행 가속도를 이어가기 위해 내민 승부수다. 다만 오는 3월 개막하는 이 전시에 대한 미술계의 시선은 엇갈린다. ‘충격의 유효기간’이 지난 한물간 30년 전 작가라는 지적, 흥행에만 치중하는 상업 전시라는 비판, 동물 사체와 사람 해골로 만든 작품을 전시하는 것에 대한 우려 등이 따라붙으면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허스트 카드를 꺼내 든 것일까.6일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26년 전시 계획 및 주요 사업’ 발표 자리에 나선 김성희 관장은 이 질문에 대해 ‘국제거장전 정례화’를 답변으로 내놨다. 문화 콘텐츠 지역 향유 증진, 청년 보존전문가 양성, 미술아카이브 디지털 서비스, 학예연구 국제 네트워크 구축과 함께 올해 제시한 미술관 주요 사업으로 현대미술 거장의 대형 전시를 매년 지속 개최하겠다는 것. 김 관장은 이날 “영국 테이트모던 같은 미술관에서 볼 법한 전시를 국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제 거장전 정례화의 프로토타입 격으로 지난해 연 ‘론 뮤익’ 전시로 53만 명을 끌어모은 성과의 연장선이라는 설명이다. 김 관장은 “관람 태도, 작품을 보는 시각과 느낀 것을 표현하는 방법 등 한국의 관람 수준이 높아졌고, 관람객들이 그저 블록버스터 전시라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주요 전시 중 하나인 ‘물방울 작가’ 김창열 전시 흥행도 자극이 됐다. 반평생 물방울만 그려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가라는 갇힌 틀을 넘어 ‘왜 물방울을 그렸는지’ 인식을 확장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다. 김 관장은 “김창열의 일생을 보여주며 물방울이 관통하는 게 무엇인지를 재조명했고, 국민 전시로 꼽힐 만큼 호평받았다”며 “허스트 역시 이단자라는 평가를 받지만 죽음과 그걸 극복하려는 욕망, 욕망을 활용하는 자본과 사회제도를 뒤집은 퍼포먼스를 미술관이 재조명하는 것이 현대미술사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높은 이름값만큼 허스트의 전시가 화제를 모으지만, 올해 미술 애호가를 사로잡는 전시는 따로 있다. 서울관(서도호·8월) 덕수궁관(이대원·8월) 과천관(박석원·11월) 청주관(방혜자·4월) 등 네 곳의 전시관마다 한국 대표 작가를 소개한다. 이 중 설치미술가로 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서도호의 회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김인혜 학예실장은 “최근작부터 미공개작을 아우르는 엄청난 양과 질을 자랑할 것”이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