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사회단체 ‘맏형’ 격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열매)는 지난해 8477억원의 최대 모금 실적을 거뒀다. 올해도 이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기업들이 대내외 경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후원 액수를 늘렸기 때문이다. 디지털·가상자산 바람을 타고 톡톡 튀는 모금 아이디어를 낸 것도 실적 증가의 비결이다.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71)은 지난 19일 “경영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데도 후원 금액을 늘린 기업이 적지 않다”며 “과거에는 기업에 국가 권력과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국민적 지지와 성원이 경영의 필수 요소가 됐다”고 짚었다.
김 회장은 정치권 좌우 진영을 넘나드는 ‘해결사’로 불렸다. 평생 학자로 살았지만 사회 여러 난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다.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거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제인협회 전신) 회장 직무대행을 지낸 뒤 2023년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령탑 역할을 맡고 있다. 여러 조직을 거친 그의 경험은 사랑의열매가 성과를 내는 데 기여했다. 암호화폐 ‘코인 기부’를 유도하고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법인이 직접 코인 지갑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기부자 명의를 반려동물 이름으로 하게 한다거나,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트렌드에 맞춰 QR코드나 키오스크로 간편 결제하듯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어떨까. SK의 올해 사랑의열매 기부액은 200억원으로 전년 120억원 대비 67% 늘었다. HD현대도 같은 기간 20억원에서 30억으로 50% 증액했다. 그는 “국내 정치 상황의 격변, 환율과 무역 불확실성 등으로 전례 없이 기업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기부를 통해 조직이 얻는 효과가 작지 않다고 판단해 액수를 늘리고 있다”고 했다.
기업들이 기부를 통해 얻는 대표적 효과는 직원들의 자부심 증가다. 과거에는 오너가 결정한 곳에 기부하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직원들이 함께 사회 문제를 발굴하는 사례가 많다. 김 회장은 삼성이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을 돕는 ‘희망디딤돌 사업’을 상향식 의사결정의 대표적 예로 들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모금 단체에 그치지 않고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국가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한 사회 난제를 빠르게 알아내는 싱크탱크로의 진화다. 행정 전문가인 김 회장이 오랫동안 바라던 모습이다. 취약계층이 겪는 고통이 혹한기에서 혹서기로 확대되고, ‘경계선 지능’(느린 학습자) 아동, 고립 청소년 문제 등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그는 “기후 변화, 기술 발전 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가 적지 않다”며 “이런 문제는 당장에 표(票)가 되지 않아 정치권과 정부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어 민간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