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채프먼이 관심을 가진 분야는 자동차다. 20살 되던 1948년 영국의 국민차로 불렸던 오스틴7 중고차를 개조해 모델명을 ‘Mk1’으로 명명하고, 지역 레이싱 대회에 참가했다. 이때 경주차에 부착한 이름이 ‘로터스’다.
자동차에 심취한 채프먼은 무엇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자동차 구조의 혁신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일찌감치 경량 소재 탄소 섬유를 사용했고 공기저항을 억제하는 디자인을 도입했다. 출력보다 빠른 가속력에 초점을 맞춰 양력을 억제하는 바닥 구조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후 로터스만의 독창적인 경량 제품 기술을 내세워 영국의 주요 자동차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1982년 재정 문제로 생산이 급감하자 자동차 제작 외에 기술 제공 사업을 추가하며 도요타의 스포츠카 수프라 개발을 지원했다. 이어 미국에도 회사를 세워 어려움을 헤쳐나가던 도중 54세로 삶을 마쳤다.
채프먼 사망 이후 로터스는 여러 소유자의 손을 거쳤다. 1983년 영국 자동차경매회사를 운영하던 데이비드 위킨스가 로터스를 손에 쥐었고, 과거 기술 제휴를 통해 로터스 지분을 보유했던 도요타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소유권을 넘겼다. GM은 부가티를 소유한 이탈리아 사업가 로마노 아르티올리에게 로터스를 매각했다. 다시 로마노는 1996년 지분을 말레이시아 자동차기업 프로톤에 넘겼고, 20년 후 프로톤은 중국 지리그룹에 로터스를 안겼다.경영권을 확보한 지리그룹은 로터스 브랜드를 경량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 회사로 재정립시켰다. 마지막 내연기관 에마이라 이후 브랜드 최초의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엘레트라, 한정판 경량 전기 스포츠카 에비야, 전기 GT 버전 에메야 등 전기차(BEV)로 기술 역량을 모았다. 덕분에 국내에서 판매되는 로터스 제품 또한 모두 BEV로 구비됐다. 동력원이 전기로 바뀌며 저배기량 경량 스포츠카는 추억이 됐지만 기본적인 ‘경량’ 속성은 유지했다.
전기 동력으로 바꾸며 최근에는 특별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른바 전기차 화재 우려 불식이다. 주정차 상황이거나 배터리 충전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동일한 전기차로 교환해준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해당 내용을 처음 적용하는 국가로 한국을 선정했다. 지난해 메르세데스 벤츠 청라 아파트 주차장 화재로 형성됐던 불안감을 판매사가 책임지겠다는 의미다. 물론 교환에 따른 비용도 모두 제조사가 부담한다.
시장 반응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BEV의 경우 화재 발생보다 발생 이후 수반되는 제품의 재산적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데 신차 교환은 손실이 ‘0’이라는 점을 의미해서다. 그 결과 신차 교환을 꺼려했던 국산 및 수입차 업계에 로터스와 비슷하거나 동일한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로터스가 쏘아 올린 ‘BEV 신차 교환 프로그램’이 국내 자동차 시장 전반으로 확산될 지 사뭇 궁금할 따름이다.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