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를 부과할 것이 확실시되면서 관세 철폐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한·미 FTA는 껍데기만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미국은 FTA 체결국 중 유독 한국에만 가장 높은 관세율을 적용했다. 호주 칠레 콜롬비아 싱가포르 등 11개국은 기본 관세율인 10%를 적용받았다. 이스라엘(17%), 니카라과(18%), 요르단(20%)은 기본 관세율보다 높았지만 한국보다는 낮았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상호관세로 FTA는 사문화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선제적으로 FTA가 정상화될 때까지 적용을 유예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강 대 강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국내에선 FTA 무용론이 더욱 거세지겠지만 무효가 된 건 아니다”며 “한·미 FTA는 안보와 경제를 같이하는 전략적 동맹이란 관점에서 체결돼 그 틀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당국은 국가별 차등 관세가 부과되는 9일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경쟁국보다 낮은 수준으로 관세율을 끌어내려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공개 입찰’을 시작한 만큼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일 방안을 제시하는 게 출발점”이라며 “관세는 한번 부과되면 오래 지속되는 성질이 있으니 속전속결 협상이 최우선”이라고 당부했다.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일본보다 관세율이 1, 2%포인트 높고 낮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전체적 관세율을 낮추는 게 우선”이라며 “품목별 예외 조항 등을 적극 활용하고, 미국 시장 품목별 수출량과 경쟁 국가 등을 면밀히 따지는 세밀한 실무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한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대미 협상할 때 일본 대만 등 아시아 국가와 협력하고, 리스크는 서로 나누는 공조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호관세 부과 조치를 협상 시작점으로 여기고, 국내 주요 기업이 공동으로 ‘대미 투자 패키지’를 내놓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대훈/김리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