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9일 17:0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업공개(IPO) 제도가 다시 수술대에 오른다. 기관투자가의 의무보유확약을 확대하는 동시에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의 자격을 강화할 계획이다. 공모주가 증시에 입성한 뒤 주가 변동성을 완화하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증권사 IPO 관계자들은 무력화된 수요예측 제도를 바로잡을 기회라고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수년간 IPO 제도 개편이 반복된 만큼 제도 전반에 걸쳐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단 평가도 있다.
수요예측 제도에 칼빼든 당국
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올 상반기에 기관투자가의 의무보유확약을 확대하고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의 자격을 강화하는 내용의 IPO 제도 개편안을 공개한다. 수년 동안 증권사 IPO 실무진이 금융당국에 꾸준히 건의했던 사안이다.증권사와 기관투자가는 재작년 파두 사태 직후 금융당국에 IPO 수요예측 제도 개편을 요청했다. 단기 차익만 노리는 기관투자가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시장이 왜곡됐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은 주관사의 IPO 주관업무 부실과 뻥튀기 상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해당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올해 관련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투자협회 주도로 진행된 논의에서도 관련해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자격을 제한하거나 코너스톤 제도 도입을 앞당기는 등도 여기서 논의됐다. 해당 안건 등을 놓고 아직 공개적으로 시장 참여자의 의견 수렴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부터 공개적으로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증권사들은 제도 개편 움직임을 반기고 있다. 가격 결정 기능이 상실된 수요예측 때문에 주관업무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IPO 기업 대다수는 공모가를 희망가격 상단보다 20~30%씩 높여 증시에 입성했다. 기업가치 산정 역량은 없이 외형만 기관투자가인 곳들이 단타 이익을 노리고 수요예측에 대거 참여해서다. 증시에 상장한 뒤 이들 기업의 주가는 급락하며 증시 변동성을 키웠다.
“땜질식 처방에 그쳐선 안돼”
IPO 제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IB 업계 관계자는 “2020년을 기점으로 개인투자자 관심이 높아지자 거의 매년 IPO 제도가 바뀌고 있다”며 “매번 이 같은 부작용이 누적되면서 시장의 혼란이 더욱 커졌다”고 비판했다.2020년 IPO 공모주 일반청약 물량은 기존 20%에서 25%로 늘었다. 일반청약 물량의 절반을 청약자에게 같은 수량을 배정하는 균등배정도 도입됐다. 2023년부터는 ‘허수성 청약’ 방지를 위해 기관의 주금납입 능력을 의무적으로 점검하도록 했다. 수요예측 기간을 2영업일에서 5영업일로 늘리도록 권고하고 초일가점을 도입했다. 초일가점은 수요예측 첫날 주문을 넣는 기관투자자에 공모주 물량을 더 많이 배정하는 방식이다. 상장 당일 가격 변동폭도 기존 공모가의 62~260%에서 60~400%로 확대됐다.
지난해에는 IPO 기업에 대해 부실한 실사를 한 증권사에 대한 제재 근거를 마련하는 등 추가 제도 개편이 이뤄졌다.
최근 공모주 시장 변동성이 커진 이유를 일련의 IPO 제도 개편에서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는 기관 물량이 줄어든 대신 가격 변동성 가능성은 커졌다. 초일가점을 노리고 첫날부터 무조건 높은 가격을 부르는 기관도 늘어나면서 공모주 시장이 투기판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다.
정작 일몰제로 도입된 제도는 매년 기한이 연장됐다. 일몰제는 한시적 필요에 의한 도입하는 규제다. 하지만 지난 2014년 일몰제로 도입된 하이일드펀드 등에 대한 공모주 우선 배정 제도는 매번 기한이 연장됐다. 2018년 도입된 코스닥벤처펀드 우선 배정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증권사 IPO 본부장은 “당장 눈앞의 문제만이 아니라 IPO 관련 규제가 서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넓은 시각에서 전면 검토해야할 때”라며 “반복해서 규제를 더하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