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韓 계엄·탄핵에 대한 질문
지난 며칠간 연이어 열린 밍글링에 대한 기대는 컸다. 빅테크 CEO들과 짧게나마 지근거리에서 대화할 드문 기회여서다. 친분을 쌓고 향후 인터뷰할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런 야심 찬 기대는 번번이 예상을 빗나갔다. 질문할 틈도 없이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질문이 역으로 쏟아져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한국의 정치 상황에 취재하러 갔다가 취재당하고 돌아오기 부지기수였다.한 기업 CEO에게 한국 특파원이라는 소개를 건네자 “엄청난 혼돈의 나라에서 왔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 비상계엄 뉴스를 봤을 때 정말 두 ‘코리아’ 중 ‘사우스 코리아’를 말하는 게 맞는지 의심했다”는 다른 기업 CEO의 말에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 외신 기자가 “한국은 내가 아는 나라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나라 중 하나인데, 다른 한쪽에서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이 펼쳐진다는 게 충격적이었다”고 말하자 임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들의 관심은 단순히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한 기업의 임원은 “그동안 윤석열 정부와 대화를 나눈 규제 완화와 같은 일은 순식간에 없던 일이 되는 것이냐”고 우려했다. “정권 교체가 되면 규제 완화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되느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한국의 '예측 불가능성'
실리콘밸리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우려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의 부재’다. 가뜩이나 5년에 한 번씩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책 기조가 크게 바뀌는데, 지난 2년여간 윤석열 정부와 진행해 온 많은 협상은 아예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가장 컸다. 제아무리 빅테크라도 한국 시장에서는 한낱 하나의 외국 기업일 뿐인데 한국 정치의 예측 가능성이 너무 떨어져 사업 방향을 잡기 어렵다는 푸념도 이어졌다.자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은 세계정세에 예고된 거대한 쓰나미와 같다. 각국은 그동안 자국 기업이 해일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대한 경제외교의 방파제를 쌓아 왔다. 그러는 사이 윤 대통령은 쓰나미가 닥치기 직전 그나마 쌓고 있던 둑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건 물론, 자체적인 소용돌이까지 만들어냈다.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 모두 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방향을 잃고 허우적대고 있다. 그런데도 이제 조타수가 돼야 할 국회는 여전히 “여당이 있다, 없다”와 같은 예송논쟁만 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