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미국 상무부가 대중국 HBM 수출 금지를 공식화한 만큼 SK하이닉스에 비해 중국 수출 비중이 큰 삼성전자도 HBM4 성능을 끌어올려 미국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데 전력을 다할 것으로 알려졌다. HBM4를 둘러싸고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기술 개발 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SK하이닉스, 3㎚ 승부수
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TSMC와 개발 중인 6세대 HBM(HBM4)의 베이스다이 제작에 맞춤형은 3㎚, 범용은 12㎚ 파운드리 공정을 활용하기로 했다. 당초 맞춤형 HBM에는 5㎚ 공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한 번에 두 단계나 올려 잡기로 했다. TSMC는 지난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연 ‘TSMC 유럽 기술 심포지엄’ 행사에서 HBM4 베이스다이 생산에 12㎚(범용)와 5㎚(맞춤형) 공정을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HBM4에서 베이스다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HBM을 연결하는 핵심 부품이다. HBM3E까지는 메모리 제조사인 SK하이닉스가 베이스다이를 직접 만들었지만, HBM4부터는 미세 공정이 필요해 파운드리 기업과 협업해야 한다. 베이스다이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HBM4의 성능이 크게 좌우되는 점을 감안해 SK하이닉스는 TSMC와 개발한 최고 공정을 적용하기로 했다. 3㎚ 공정으로 제조하면 5㎚보다 성능이 20~30%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애플의 아이폰, 맥북에 들어가는 최신 반도체가 TSMC의 3㎚ 공정에서 양산된다. 엔비디아의 GPU는 4㎚ 공정에서 생산한다. 3㎚ 공정을 활용하게 되는 만큼 내년 출시될 맞춤형 HBM4의 성능은 물론이고 전력 등 모든 측면에서 HBM3E보다 크게 업그레이드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3㎚ 공정을 적용하는 건 엔비디아 등 고객사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엔비디아는 최신 HBM 제품의 58%를 사들이는 ‘큰손’으로 SK하이닉스 제품 대부분을 구매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엔비디아가 HBM4 공급 일정을 6개월 정도 앞당겨달라고 요청하자 생산 속도를 높였다. SK하이닉스는 최고 성능의 맞춤형 HBM을 최대한 빨리 납품해 엔비디아와의 밀월 관계를 한층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 3㎚ 맞불 놓나
내년 하반기 열릴 맞춤형 HBM4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메모리 기업 간 성능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주도권을 이어가기 위해 TSMC, 엔비디아와 꾸린 ‘팀 엔비디아’ 동맹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행사에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웨이저자 TSMC 회장이 영상으로 잇따라 등장해 SK에 힘을 실어줬다.맞춤형 HBM 시장은 메모리 기업 간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지난 9월 대만에서 열린 세미콘 타이완 2024에서 AI 메모리 시장을 잡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맞춤형 HBM’을 꺼내들었다. 누가 빨리 최고 성능의 맞춤형 HBM4를 공급하느냐에 따라 AI 시대 메모리 시장의 최종 승자가 가려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삼성전자는 맞춤형 HBM에 4㎚ 공정을 활용하기로 방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3㎚ 공정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도 자사 파운드리와 함께 TSMC의 3㎚ 공정을 활용하는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채연/황정수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