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는 4년 전 하이브 상장 심사 당시 주주 간 계약의 존재 자체를 전혀 몰랐다고 한다. 심사 담당자들은 “방시혁 의장이 하이브 지분 20% 안팎을 보유한 사모펀드(PEF)들과 이익을 공유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주 간 계약서를 몰랐어도 신생 PEF를 둘러싸고 의심할 만한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방 의장 측근이 세운 이스톤에쿼티파트너스(이스톤PE) 등기부등본만 떼어봤어도 주주 간 계약의 실체가 드러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하이브 사태로 상장 첫 관문인 거래소의 부실 심사가 도마에 올랐다.
속았나, 무능했나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거래소는 2020년 하이브 심사 당시 이스톤 제1호 펀드와 이스톤-뉴메인 제2호 펀드의 주요 출자자 명단을 제출받아 검토했다. 방 의장 측근이 만든 이스톤PE가 조성한 펀드로 상장 직전 하이브 지분 11.4%를 보유하고 있었다. 거래소는 방 의장 측이 펀드출자자(LP)로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다.증권사 기업공개(IPO) 담당자들은 이스톤PE 등기임원 이름만 유심히 봤어도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김중동 당시 하이브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이승석 당시 하이브IPX 대표는 이스톤PE 등기임원을 지내다가 각각 사임하고 하이브에서 주요 임원으로 일했다. 소수 지분을 투자한 PEF 임원이 사외이사가 아니라 상근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심지어 심사 과정에서 김 CIO와 이 대표 등은 하이브 소속으로 거래소 실무 미팅에도 참여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주요 지분을 가진 신생 PEF에 조금만 궁금증이 있었어도 뭔가 의심하고 각종 서류를 요청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 내부에서도 “기본적인 대주주 투명성 관련 심사를 했다면 주주 간 계약은 놓쳤어도 최소한 자발적 보호예수는 받아냈을 수 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이브 상장 심사에 구멍이 뚫린 것은 대어급 IPO 기업에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탄소년단(BTS) 인기가 글로벌 시장을 휩쓸던 시기여서 상장 승인을 너무 당연시했다가 투자자 보호 사안을 놓친 게 아니냐는 것이다.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JP모간 등 대형 증권사가 주관사단을 구성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한 IPO 전문가는 “대표 주관사들이 중요사항에 해당할 수 있는 계약을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관사에 맡기고 뒷짐만
거래소는 ‘DD(Due Diligence) 체크리스트’로 불리는 기업실사점검표를 주관사에 제공한다. 상장 심사의 최소 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체크리스트에 대한 해석이 주관사마다 다를 수 있다. 하이브 주관사들이 방 의장과 PEF 사이의 주주 간 계약을 거래소에 공개하지 않은 것도 체크리스트를 임의대로 해석하면서 벌어진 일이다.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하이브 주관사가 주주 간 계약을 공개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 때 거래소에 문의하면 될 일을 왜 스스로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는지 의문”이라며 “관행적으로 주관사에 맡기고 거래소는 뒷짐만 지고 있으니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하이브가 2020년 10월 중순 상장한 이후 PEF가 폭탄 매물을 쏟아내면서 주가가 반 토막 나자 거래소도 뒤늦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당시 주주들이 불공정거래 의혹을 제기하자 거래소는 이례적으로 신규 상장 종목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뒤늦게라도 심사 단계에서 놓쳤던 주주 간 계약을 밝혀낼 기회였다. 상장 보름여 후 거래소 조사 움직임이 있자 이스톤PE 등기임원 3명은 전원 사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래소의 조사는 아무 소득 없이 흐지부지됐다.
최석철/조진형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