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신전은 아테네에서 약 170㎞ 떨어진 태양신 아폴론의 성지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폴론은 이곳을 지배하던 거대한 뱀 ‘피톤’을 죽이고 자신의 신전을 만들었다. 피톤에서 비롯한 신관 ‘피티아’가 아폴론의 신탁을 읊었다.
피톤을 영어로 하면 파이선(python)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기 위해 가장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이기도 하다. 피티아가 아폴론의 힘을 빌려 미래를 얘기했다면 오늘날은 파이선을 통해 AI 모델을 만들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한다.
AI가 신탁처럼 한 번에 결과물을 주는 것은 아니다. AI의 예측과 신탁이 가장 다른 점은 데이터 활용 여부다. AI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정확도가 올라간다. 단순히 많기만 하다고 될 일도 아니다. 양질의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파이선은 이 같은 데이터를 다루고 가공해 AI 모델을 구축하는 데 가장 유용한 도구다.
AI를 잘 쓰기 위해선 파이선 지식 이상으로 데이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데이터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집값을 예측하기 위해 교통, 학군, 편의시설, 금리 등 부동산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공인 민간자격으로 지정된 AICE(AI Certificate for Everyone·에이스) 어소시에이트는 파이선을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하고 AI 모델을 제작하는 실력을 평가한다. 공인 민간자격은 자격기본법상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국가자격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AICE는 한국경제신문사와 KT가 공동 개발해 2022년 11월 첫선을 보인 국내 1호 AI 활용능력 검정시험이다. AI에 관심 있는 비전공자가 보는 베이식과 기업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실무자를 대상으로 하는 어소시에이트가 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AI를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게 시험을 내놓은 취지다. 데이터에 대한 약간의 관심과 업무를 개선해 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 AICE 시험을 통해 AI를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승우 테크&사이언스부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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