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잇따라 낮추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경쟁 우위에도 불구하고 내년 전통적인 메모리 가격 하락 압력이 거세 이익 눈높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오전 10시30분 현재 주식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전일 대비 3.5% 내린 17만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주가 약세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는 미국 반도체법(칩스법)을 다시 한번 강하게 비판하자 투자심리가 악화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공동 수장으로 지명된 비벡 라마스와미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현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에 대한 집행 기조를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반도체법은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공장 등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데 상무부가 지원 대상으로 선정한 기업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이 보조금을 아직 받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15.8% 떨어졌다. 지난 7월 고점 대비로는 31.2%나 하락했다. 분기 사상 최대 매출액과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흑자전환을 기록했지만 미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 증가와 전통 메모리 부문에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 탓이다.
업계에선 내년 반도체 시장 확대는 계속되지만, HBM 등 첨단 반도체와 전통(범용) 제품 간 양극화가 심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내년 메모리(D램·낸드) 반도체 시장 규모가 1757억달러(약 245조원)로 올해(1609억달러) 대비 9.1% 늘겠지만 대부분 첨단 반도체로의 쏠림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범용 반도체의 부진은 수급 악화 때문이다. PC, 모바일 등 전통 제품에 대한 수요는 정체되고 있는 반면 중국 기업들의 공급량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 정부의 기술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 창신, 푸젠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공격적인 생산시설 증설로 인해 전통 반도체 공급 과잉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송명섭 iM증권 연구원은 "중국 D램 업체들의 내년 생산량은 전년 대비 99% 증가하고, 출하량 기준 시장 점유율은 올해 5.3%에서 9.0%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트렌드포스는 중국 창신메모리의 올해 모바일 D램 시장 점유율이 비트 기준 9.0%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더해 저가 서버용 제품을 중심으로 서버 D램 시장까지 진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서버 D램 시장에서 중국 창신메모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 난야, 미국 마이크론 등과 경쟁하게 될 전망이다.
송 연구원은 "HBM 가격 안정에도 불구하고 내년 1분기부터는 DDR4,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락해 DDR5 가격도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SK하이닉스 실적도 악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트렌드포스는 수급을 원인으로 내년 D램 가격 방향을 '상승'에서 '하락'으로 바꿨다.
증권가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최근 목표주가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25만원으로 낮췄고, 유진투자증권(28만원→24만원), 신영증권(24만원→22만원), 키움증권(22만원→21만원), iM증권(20만3000원→18만원)도 하향 조정에 동참했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인공지능(AI) 시장과 전통 수요처 간 수요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가격 전망을 다소 보수적으로 가정했다"며 "내년 수요에서 변화가 없다면 D램은 내년 3분기, 낸드는 내년 1분기부터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망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