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나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여당 A의원과의 통화에서 최근 기자가 들은 답이다. 정치권과 산업계의 현안으로 떠오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로 예외)과 관련해서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국민의힘이 지난 8월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한 ‘반도체 특별법’의 핵심 내용 중 하나다. 각국이 ‘반도체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 인력에 한해서는 주 52시간 근로제 예외를 인정해주자는 내용이다. 국민의힘에서 송석준·고동진·박수영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고, 여당과 정부안을 취합해 이철규 산자위원장이 지난달 발의한 법안에도 담겨 있다.
문제는 해당 법안을 본격 논의한 지난 21일 산자위 산자특허소위에서 불거졌다. A의원은 회의 내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소위에 들어가지 않아 모른다”며 “보좌관에게 물어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A의원은 여당 내에서 산자위 소관 법안 처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다.
A의원뿐 아니다. 21일 소위에는 여당에서 5명이 참석하게 돼 있었지만, 고동진 서일준 박형수 의원 등 3명만 자리를 지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야당에서는 소위 소속 의원 8명이 전원 참석했다.
사전 준비도 미흡했다. 통상 당론으로 추진하는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각 상임위 간사가 미리 토론자료를 준비해 소위에 들어가는 의원에게 배분한다. 야당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날 소위에선 이 같은 준비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반도체 특별법에서 떼어내 근로기준법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노조 출신의 강성 야당 의원들이 포진하고 있어 환노위로 이관되면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경영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날 소위가 끝난 직후 민주당 측은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을 반도체 특별법에서 빼기로 가닥이 잡혔고 해당 내용은 환노위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기정사실화했다.
고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은 “다음 소위에 산업통상자원부가 반도체 특별법 내에서 화이트 이그젬션을 논의해야 할 근거 자료를 갖고 오기로 했다”며 여지를 남겼지만, 경제계는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총선 패배로 여당이 입법 현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현안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소위에 참석하는 기초적인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 여당의 존재 이유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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