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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위험한 비행에서 얻은 지혜, 인류에게 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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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도, 신호등도 없는 하늘을 질주하는 비행기야말로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다. 100년 전에는 어땠을까. 비행기 조종사가 주인공인 〈인간의 대지〉 속 비행기는 덮개도 없는 데다 기계장치들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동력 비행기의 모든 조건을 최초로 충족시킨 것은 미국인 라이트 형제가 1903년에 날린 플라이어(Flyer) 1호다. 〈인간의 대지〉는 비행기가 하늘을 난지 36년 만에 나온 소설이다. 생텍쥐페리가 ‘휴머니즘’이라는 주제로 짧은 글을 여러 편 발표하자 〈좁은 문〉의 작가 앙드레 지드가 “그것들을 한데 모아 장편소설로 발전시키라”고 강하게 독려해 탄생했다.

생텍쥐페리가 9세 때인 1909년, 루이 블레리오가 영국해협을 비행기로 횡단하는 데 성공하자 프랑스인은 열광에 빠졌다. 마침 생텍쥐페리가 사는 생모리스 인근에 비행장과 조종사 양성학교가 들어섰다. 12세 때 조종사가 태워준 비행기로 짧은 비행을 맛본 생텍쥐페리는 사립 비행학교에서 비행을 익혔다. 첫 단독비행에서 착륙 이상과 엔진 화재를 겪은 그는 1922년 르부르제 지방의 전투 비행대로 배속되었다. 이듬해 비행기 추락으로 두개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늘 비행기와 함께했다.

1944년 7월 31일 비행기를 타고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시신도 비행기의 잔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독일군 정찰기에 의해 격추되어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있는 앙주만 인근 해안 어딘가에 추락했을 것으로 추측할 따름이다.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

매우 드문 조합인 ‘비행기 조종사이자 작가’인 그는 비행기를 조종하며 겪은 경험을 세심하게 다듬어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이며 사색적인 산문’을 써서 새로운 형태의 감동을 안겼다. 특히 〈어린 왕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프랑스 서적으로 세계 각국 수많은 독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의 작품이 “잘 다듬어졌고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평가받는 이유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비행 경험이 장엄한 서사시처럼 긴장감을 내뿜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지〉 1장 ‘항공로’에서 새내기 비행사들은 ‘무뚝뚝하고 약간은 차갑기도 한’ 선배들이 ‘대단히 거만한 태도’로 던지는 충고를 듣는다. “우리가 그들을 계속해서 존경하게끔 교묘하게 행동했다”고 묘사한 선배들에 대해 “때때로 그들 중 하나가 돌아오지 않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는 영원히 우리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다”고 기록해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비행훈련을 마친 ‘나’는 비행기 승객들과 아프리카로 가는 우편물을 책임지게 된다. 덮개가 없는 비행기, 열악한 기계장치와 통신 장비로 인해 조종사의 감각이 가장 중요한 때였다 “구름바다 위를 나침반만 가지고 비행한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일세. 하지만 명심하게 구름바다 밑은…… 바로 저세상일 테니까”라는 대화를 나누는 조종사들이 아프리카 사막 위를 날다 추락하면 몇 달 뒤 시체로 발견되기도 한다. 리비아 접경지대 사막에 떨어진 상황을 그린 7장 ‘사막 한복판에서’ 나는 “이곳에서 구조란 없다. 이곳에서 실수에 대한 용서란 없다. 우리는 신의 뜻에 내맡겨져 있을 뿐”이라고 읊조린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

환영과 망상,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라는 걸 깨달아야 비로소 출구가 보인다는 걸 〈인간의 대지〉는 장렬하게 귀띔한다. 구출될 때 내가 깨달은 “조난자는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조난당한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의 침묵으로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 끔찍한 실수로 인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듯 고통스러운 사람들”이라는 점도 삶의 이치다.


위험하고 고통스럽지만 〈인간의 대지〉에서 나는 ‘내 직업 안에서 행복하다. 나 자신이 하늘을 경작하는 농부인 것 같다’며 벅찬 마음을 드러낸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것이 내 직업의 생리다”라는 독백에서 위험한 비행을 하면서 주옥같은 글을 쓴 생텍쥐페리의 ‘위대한 행보’에 공감하게 된다.

비행을 나설 때마다 죽음을 염두에 두었던 생텍쥐페리는 비장한 항로에서 얻은 지혜를 인류에게 전하고 산화했다. 늘 앞을 보며 비행기를 조종했던 그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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