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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만 골든타임 놓쳤다"…'10조 사업' 날린 이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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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주 정부의 10조원 규모 호위함 사업에서 국내 방산기업이 탈락한 데 ‘지각 서류 제출’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기술보호법의 기술 유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방위사업청 등 관련 기관에 건별로 목록 반출 허가를 받는 바람에 한국 업체만 호주 정부가 제시한 제출 기한을 넘긴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K방산 수출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이런 낡은 규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탈락한 호주 정부의 110억달러 규모 호위함 입찰 과정에서 국내 방산업체가 호주 측이 요구한 제출 기한을 놓쳐 양해를 구한 뒤 시일을 넘겨 목록을 제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호주 측이 최대 1만 장에 달하는 함정 정보를 요구했는데 국내 기업이 제때 제출하지 못한 게 뛰어난 가성비와 건조 역량에도 탈락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정부 차원에서 방산 수출에 뛰어든 독일, 일본과 달리 한국 기업은 부품별로 방위사업청, 산업통상자원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의 해외 반출 승인을 받는 데 상당 시간을 허비했다. 익명의 방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해외 경쟁사와 달리 우리 측은 품목별로 허가받는 과정에서 자료를 제때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호주 국가안보위원회(NSC)는 신형 호위함 11척을 짓는 ‘SEA3000’ 사업 후보를 독일 티센크루프마린시스템스의 MEKO,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모가미로 압축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쇼트리스트에서 제외됐다.
韓은 "부품, 일일이 반출승인 받아라"…獨·日은 정부가 '일괄 패스'
호주 호위함 탈락, 이유 있었네…기술수출 승인 받는데 하세월
110억호주달러(약 10조원) 규모의 호주 차기 수상함 사업에서 국내 조선 ‘빅2’가 쇼트리스트에서 탈락한 결정적 원인은 개별 기업이 기술별로 해외 반출 가능 여부를 일일이 물어봐야 하는 까다로운 국내 절차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방위산업 기업은 해외로 기술 목록을 반출하려면 방산기술보호법, 방위사업법 등에 따라 부품별로 관할 부서의 기술 검토를 받아야 한다.

기업은 관련 규정을 적극 해석해 해외에 기술 목록을 넘겼다간 ‘방산 기술 유출범’으로 몰릴 수 있어 건별 승인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국내 업체가 방산 장비를 수출하려다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돼 수년간 소송을 이어간 끝에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사이 도산한 사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대한 서둘렀지만 ‘골든타임 놓쳤다’

1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호주 정부는 5월 말 호위함 사업 입찰에 참여한 업체를 대상으로 함정 스펙이 담긴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제출 기한은 통상 국제 함정 수출에 적용되는 30~60일 사이였으나 함정에 들어가는 부품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입찰 단계에서부터 방대한 기술 자료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방위사업청과 국방과학연구소(ADD) 등 유관기관이 평소보다 기간을 앞당겨 허가를 내줬지만 관련 기관이 워낙 많아 기술 심사와 자료 준비 시간이 부족했다”고 했다.

국내 기업이 ‘온 타임’에 실패한 건 호위함의 특징도 한몫했다. 호위함은 해상 작전 헬기, 함포 등 무기체계, 대잠수함 레이더 등 다양한 군사 시스템이 집약된 복합무기체계다. 부품별로 ADD, 산업자원통상자원부, 업체 등으로 개발 주체가 다른 데다 국내 함정을 원형 그대로 수출한 전례가 없어 해군도 검토 기관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별 기술 요구 수준과 적용 기준이 달라 수출 때마다 애를 먹는 일도 적지 않다. 2022년 본계약을 맺은 K9 자주포 사업에선 이집트 정부가 상당한 수준의 기술 이전을 요구해 한화디펜스가 곤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집트는 현지 방산 규제가 없다시피 해 요구를 그대로 들어줬다간 기술이 유출될 우려가 컸다”고 했다.
독일 일본은 국가대항전, 한국은 기업 몫

호주 호위함 사업 경쟁국이던 일본 독일은 한국과 달리 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뛰어들었다. 일본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호주 측에 ‘납품할 무기 체계 생산 기지를 호주에 짓겠다’고 제안하는 방식으로 미쓰비시를 막후 지원했다. 일본은 2019년 방위청 산하에 설치한 방위장비청이 자위대의 무기 획득과 수출을 통합적으로 관할한다.

한국 기업은 수출 시 해외 정부와 직접 마주 앉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내수 위주이던 시절 생겨난 규제가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계약 성사 후에도 1년에서 3년이 걸리는 수출 승인 절차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2년 4월 호주 정부와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비교적 이른 11개월 만인 2023년 3월 방사청에서 수출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호주 측이 기술 자료를 추가 요청할 때마다 6~11주가 소요되는 국내 기술 심사를 받고 있다. 사업 일정이 지연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2015년 방산기술보호법이 제정된 뒤 업체 자율로 보안 기술을 규제하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유독 해외 반출 시엔 기관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한 방산 기업 고위 관계자는 “국방 기술은 상당수가 ADD와 기업 간 공동연구를 거친 국가 소유인데, 수출 시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게 문제”라며 “방사청에 보안 기술 여부를 물어봐도 ‘알아서 정하라’는 말을 듣기가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방산 수출의 가장 큰 장애인 ‘B2G’(국내 기업·해외 정부 간 거래) 관행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필요할 땐 정부가 테이블에 앉고, 수출 가능한 품목의 목록을 작성해 기업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한국의 함정 분야 기술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협조를 구할 정도로 세계적 수준이라는 점에서 이번 수주 실패가 뼈아프다”며 “수출 시스템을 손봐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조철오/정희원/김대훈 기자 che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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