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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미술사 다시 쓴 위대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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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큰손 컬렉터 루돌프 레오폴트는 27세 청년이던 1953년 3만실링이라는 거금을 주고 그림 한 점을 샀다. 촉망받는 의대생이 학업은 뒷전이고 화랑가나 경매장을 기웃거리는 모습이 답답했던 부모가 졸업 선물로 약속한 폭스바겐 비틀 차 한 대 가격이 3만실링이었다. 졸업 선물을 마다하고 대신 품에 안은 그림은 에곤 실레의 ‘은둔자들’. 당시만 해도 실레는 28세에 요절하기까지 우울과 불안이 잔뜩 묻은 초상과 망측한 누드 드로잉이나 남긴 별 볼 일 없는 외설 화가였다.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레오폴트는 이 순간이 미술사를 다시 쓰는 결정적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레오폴트와 실레의 만남은 반세기에 걸쳐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20세기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냈다. 이날 이후 레오폴트는 어느 집 벽장이나 지하실에 버려져 있던 실레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220여 점의 ‘실레 컬렉션’이 이렇게 완성됐다. 실레가 그린 작품들은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19세기 근대사회에서 20세기 현대사회로 넘어오는 문턱에서 화려하게 불타오른 ‘빈 모더니즘’의 정수로 재평가받는다.

예리한 안목과 과감한 투자만이 레오폴트를 ‘위대한 수집가’로 만든 건 아니다. 그는 걸작들을 수장고에 꼭꼭 숨기는 대신 대중과 공유했다. 1994년 당시 5억7000만유로로 평가되던 실레 컬렉션을 비롯한 소장품 5200여 점을 시세의 3분의 1 수준인 1억6000만유로에 정부가 매입하도록 했다. 헐값이나 다름없는 가격에 작품을 넘긴 대가로 바란 건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의 종신 관장으로 미술 애호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레오폴트 같은 수집가들은 문화강국의 초석을 닦는다. 레오폴트미술관은 오스트리아 국민을 비롯해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유무형의 가치를 창조한다. 마침 오는 11월 30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전시를 통해 레오폴트의 수집품이 한국에 온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물납제, 기증자 예우 등에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유승목 문화부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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