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0월 30일 14:3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 이사회가 단행한 '폭탄 유상증자'는 과거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KCC로부터의 경영권 공격에 대응할 목적으로 진행했던 기습 유상증자와 닮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시 법원은 대주주와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진 유상증자에 제동을 건 만큼 이번에도 증자 목적과 경영권 방어간 연관성을 둔 양 측의 법정 공방이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30일 이사회를 거쳐 신주 373만2650주를 주당 67만원에 일반공모 방식으로 유상증자해 총 2조5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시가대비 30% 가량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해 우리사주조합에 20% 물량을 우선 넘겨 우군을 늘리겠다는 행보다.
최 회장 측이 기습 유상증자를 단행한 것은 경영권 분쟁 중인 MBK·영풍 연합 의결권 지분율을 희석시키고 우리사주를 통해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번 증자로 MBK와 영풍 연합의 의결권 지분율은 기존 43.9%에서 36.4%까지 희석된다. 최 회장과 우호 백기사 베인캐피탈의 합산 의결권 기준 지분율은 기존 40.4%에서 33.5%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신주를 확보한 우리사주물량 3.4%가 최 회장 편을 들면 의결권 지분율은 36.9%까지 늘게된다. MBK 연합을 0.5%포인트(p) 앞서게 되는 것이다.
최 회장과 고려아연 이사회는 1인(특수관계자 포함) 청약한도도 11만주로 제한해 MBK와 영풍 측이 유증에 참여하는 방안도 차단했다. 단일 주주 입장에선 유상증자에 참여하더라도 전체지분율 기준 0.4%에 불과한 지분율을 얻는데 그친다.
법조계에선 MBK 측이 즉각 유상증자를 막을 가처분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각에선 2003년 법원의 판단으로 제동이 걸린 현대그룹의 일반공모 유상증자와 이번 유상증자가 유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2003년 KCC가 사모펀드 등과 함께 현대그룹의 지주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78%를 장내에서 매집해 경영권을 위협하자 현 회장은 일반공모 방식으로 1000만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를 깜짝 발표했다. 당시 발행주식(561만주)의 178% 달하는 막대한 물량인 데다 신주 가격도 기준 가격보다 30% 할인된 가격을 제시했다. KCC의 대규모 유증 참여를 막기 위해 1인당 청약한도도 300주로 제한했다.
당시 KCC는 신주 발행을 막아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은 "회사 경영을 위한 자금조달 목적이 아니라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기존 대주주와 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증명됐다"며 유상증자를 막아세웠다. 하지만 이후 KCC가 5%룰 위반 등으로 증선위로부터 주식처분명령을 받으면서 경영권 분쟁은 일단락됐다.
법조계에선 최 회장 측이 이번 증자가 현대엘리베이터 사례와 다른 점을 법원에 증명해야 법원의 제동을 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고려아연 이사회가 주당 89만원의 자사주 공개매수를 발표한지 7일만에 재무구조 개선을 목표로 유상증자를 발표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이번 증자가 경영권분쟁과 무관한 것을 증명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우리사주를 통한 의결권 부활로 MBK 측과 지분율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점도 재판부에서 고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