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에 나서면서 수도권 외곽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강남 등 서울 주요 지역 집값을 잡으려는 규제에 서민 단지부터 타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수도권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할 예정이다. 디딤돌 대출은 연소득 6000만원(신혼부부 8500만원) 이하 무주택자가 5억원(신혼부부 6억원) 이하의 주택을 매매할 때 최대 2억5000만원(신혼부부 4억원)까지 연 2~3%대 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정책 대출이다.
정부는 집값 급등세를 억제하고 가계대출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수도권 디딤돌 대출에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80%에서 70%로 낮추고 소액임차보증금액(서울 기준 5500만원)도 대출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한발 앞서 지난달부터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규제를 시행해 수도권에 1.2%포인트 가산금리를 붙였다.
스트레스 DSR은 향후 금리 상승 등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DSR을 산정할 때 일정 수준의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하는 제도다. 가산금리가 높아지면서 연간 이자 비용이 늘어나기에 대출 한도 역시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과 가계 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대출 한도를 조이고 나선 것이다.
다만 이러한 대출 규제의 유탄은 집값 상승을 주도한 서울 강남권이 아닌 서민 주거지인 수도권 외곽부터 향하는 모양새다. 자산이 적은 서민 거주지인 만큼 주택 매매에서 대출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레이크타운푸르지오' 전용면적 84㎡는 지난 7월 10억4000만원(38층)에 팔렸지만, 지난달에는 실거래가가 8억9000만원(7층)까지 내려왔다. 현재 호가도 9억1000만원부터 형성돼 있다.
인근 개업중개사는 "대장 단지인 레이크타운푸르지오를 제외한 주변 단지 전용 84㎡ 시세는 5억~6억원대 형성되어 있다"며 "대출 규제로 대장 단지를 비롯한 일대 분위기가 이미 꺾였는데, 디딤돌 대출까지 축소되면 주변 단지들은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세가 대출 한도에 걸쳐있는 만큼 축소 폭 만큼의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면서 "거래가 뜸해진 탓에 문을 닫는 중개업소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산시 상록구 '그랑시티자이' 전용 84㎡도 이달 6억8700만원(40층)에 거래됐다. 지난 7월만 하더라도 중층 매물이 7억원(10층)에 손바뀜됐지만, 이달에는 고층 매물이 더 저렴한 가격에 팔린 것이다. 바로 옆 '그랑시티자이2차' 전용 84㎡ 역시 이달 6억8000만원(13층)에 팔려 지난 8월 7억500만원(6층)보다 낮은 가격에 매매됐다.
상록구 개업중개사는 "서울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세가 이곳까지 닿으려던 차에 대출 규제가 나오면서 시장이 타격을 받았다"며 "매수 문의가 끊기다 보니 7억원에 나온 매물 호가가 천만원씩 낮아지다 6억7000만원까지 하락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민 동네일수록 대출에 민감하지 않으냐"며 "정부가 서울 집값 잡으려 던진 돌을 서민들이 맞은 격"이라고 토로했다.
매수심리가 위축되면서 매물도 점차 쌓여가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안산시 매물은 지난 30일 2387건을 기록, DSR 2단계 규제 시행 직전인 8월 30일 2177건에 비해 9.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안산시 상록구 매물도 1844건에서 1941건으로 5.2% 늘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