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잘못됐다’.
요즘 경제학자들의 화두다. 과학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큰 전쟁도 터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졌다고 느끼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성장률은 뚝뚝 떨어지고, 불평등은 커졌다. 지난 코로나19 사태는 마스크나 인공호흡기 같은 기본적인 도구조차 공급망 교란에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줬다.
많은 경제학자가 진단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 리부트>은 이런 흐름에 한마디 보태는 책이다. 책을 쓴 조너선 해스컬은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경제학 교수다. 스티언 웨스틀레이크는 영국 경제·사회연구지원위원회(ESRC) 위원장이다. 이들은 2017년 펴낸 전작 <자본 없는 자본주의>로 이목을 끌었다. 무형자산이 중요해진 경제를 분석한 책이다. 신작 <자본 없는 자본주의 리부트>는 책 제목이 비슷하지만 개정판이 아니다. 원제는 <미래를 다시 시작하다>다. 어떻게 세계 경제가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지 논한다.
저자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제적 대실망은 “무형자산 투자가 둔화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부유한 나라들의 무형자산 증가율은 1995~2008년 약 3~7%였지만, 그 후 10년 동안은 단 한 해도 3%를 넘지 못했다. 무형자산이 중요해진 경제에서 성장을 제약하는 요인이 됐다.
해법은 무형자산 투자를 늘리는 것인데, 이를 위해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형자산은 담보물이 되기 어렵다. 유형자산처럼 쉽게 내다 팔기 어렵다.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들은 실체가 있는 유형자산을 선호하고, 이런 상황에서 무형자산 투자는 잘 이뤄질 수 없다.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일종의 무형자산 투자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원동력이다. VC 모델을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하기 쉽지 않다면, 영국이 출범한 장기자산펀드(LTAF) 같은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유동성이 낮은 곳에 장기로 투자하는 개방형 펀드다.
특허와 지식재산권도 손봐야 한다고 말한다. 남의 신기술에 대한 권리를 선점해 이익을 챙기려는 특허 괴물들, 아이디어를 새롭게 결합하려는데 낡은 지식재산권법이 발목을 잡는 교착 현상 탓에 신선한 발상이 시장에 나오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20세기의 고성장기는 특별한 순간이었고, 이를 재현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제학자들에 비하면 저자들은 낙관적이다. 무형자산 투자를 늘릴 수 있다면 새로운 미래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제도 개선이 뒷받침될 때의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가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요즘 세태를 보면 의심스럽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