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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중동 긴장 고조의 원인을 이스라엘 탓으로 돌리며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역대급 규모의 공습을 감행하자 첫 국제무대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23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는 중동에서 더 큰 전쟁이 터진다면 전 세계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이스라엘은 더 광범위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취임해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번 유엔 총회를 계기로 처음으로 외교무대에 서게 됐다.
이같은 발언은 이날 하루 이스라엘이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해 대규모 폭격을 퍼부으며 500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기록한 가운데 나왔다. 레바논 보건부는 이번 공습으로 최소 492명이 사망했고, 1645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레바논 당국은 2006년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 이후 가장 치명적인 인명피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근거지인 레바논 남부부터 동부까지 24시간 동안 약 650차례 공습을 가해 헤즈볼라 시설 1100개 이상을 타격했다고 전했다.
이날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불안정한 요인은 이란이 아닌 이스라엘"이라며 이스라엘이 말로는 확전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행동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17~18일 무전호출기(삐삐)·무전기가 동시 폭발해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이란이 중동에서 전쟁과 무력 충돌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이스라엘이 똑같이 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무기를 내려놓을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 협정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자신의 취임식 참석차 이란을 찾았다가 암살당한 이후에도 "(공격에) 대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페제시키안은 당시 휴전 협정을 위해 약 2주간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애매한 평화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란 언론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하니예 암살 사건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보복을 공언했으나 두 달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 공식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미국이 파기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와 러시아 무기 수출 문제에 관해서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우리가 준비됐고, 다른 당사자들도 준비가 됐다면 또 다른 회담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이란이 핵무기 개발 노력을 중단하는 대신 대이란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체결한 협약이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이 탈퇴하며 효력을 잃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이란의 대러시아 무기 수출 의혹에 대해서는 연관성을 부인하며 "건설적으로 관여할 준비가 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날 페제시키안 대통령이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얼마나 큰 피해가 발생했는지 묻는 말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대응 계획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