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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언제나 처음인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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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첼리스트 피터 비스펠베이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에 다녀왔다. 서양 음악사를 빛낸 위대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듣는 특별한 경험을 놓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근래 큰 프로젝트를 치르느라 복잡했던 머리를 첼로의 단선율에 기대 식히고 싶은 마음이 사실 더 컸다. 3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 집중력과 체력을 양손에 모아 무대를 장악해야 하는 연주자만큼 관객에게도 상당한 집중력이 요구됐다. 하지만 아름다운 1번 모음곡의 프렐류드로 시작해 굽이굽이 서사를 거치고 나니 어느새 6번 모음곡의 찬란함에 도달해 있었다.

3시간을 올곧이 쏟아낸 연주자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며 만약 앙코르가 있다면 1번 모음곡의 프렐류드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앙코르가 이어졌다. 3시간 전 무대를 연 곡이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첼리스트가 똑같은 음을 연주했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음악이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첫 테마가 마지막 변주 이후에 똑같이 이어지지만, 그것이 같은 음일지언정 같은 음악일 수는 없는 것처럼.

앙코르를 들으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떠올렸다. 일본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일상을 그린 이 영화는 매일 창밖에서 들리는 이웃의 비질 소리에 눈을 뜨고,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뽑아 출근하고, 화장실 청소라는 자신의 하루 임무를 성실히 완수하며, 책을 읽다 잠이 드는 하루의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언뜻 단조로워 보이지만 출근길 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1960~1970년대 팝송이 날씨와 기분에 따라 달리 선곡되고, 헌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화분에 물을 주고, 공원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하는 일상은 절대로 단순하지만은 않다.

영화 ‘패터슨’도 비슷하다.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 기사 패터슨의 일주일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시리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일터에 나가고, 퇴근 후에는 바에 들러 맥주를 마신다. 패터슨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쓴 시집 <패터슨>을 좋아하는 패터슨은 휴식 시간과 일과를 마친 저녁에 시 쓰기에 매진한다. 그리고 다시 다음 하루가 시작된다. 패터슨의 반복적인 일상처럼 그의 집은 반복적인 ‘패턴’으로 가득하다.

두 영화에서 그리는 주인공의 일상은 정말 ‘같은 것’의 반복이기만 할까? 나는 그 답을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에서 찾은 것 같다. 공공 화장실 변기를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닦기 위해 거울을 비춰가며 솔질하는 히라야마에게 동료가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묻는 부분이다.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 히라야마를 통해 주어진 일상을 성실히 살아내다 보면 오늘과 다른 내일이, 지난주와는 다른 또 한 주가, 그렇게 작년과 다른 한 해가 우리에게 주어질 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그저 무심하게 흘려들어서는 앙코르로 선정된 똑같은 곡을 다르게 느낄 수 없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하루하루가 여행이라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그리고 오늘과는 다를 내일의 일상이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긴 여행의 매력이 무엇일까. 여행을 다녀온 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존재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로 예술작품을 경험한 이들이 무언가 다른 자신을 만나길 바란다.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예술을 접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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