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WB)이 고소득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한국을 지목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성장의 슈퍼스타인 한국의 배워야 한다는 조언이다.
세계은행은 1일 ‘중진국 함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1200달러도 채 안 됐지만, 작년엔 3만3000달러에 육박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이어 “한국의 경제사는 높은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중소득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필독서’(required reading)”라며 “한국은 성장의 ‘슈퍼스타’(superstar)”라고 평가했다.
세계은행은 1978년부터 특정 주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담은 연례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 주제는 ‘중진국 함정’(middle-income trap)이다. 중진국 함정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으로 진입한 뒤 고소득 국가로 올라서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세계은행은 2022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을 기준으로 하위 중소득국(1136∼4465달러)과 상위 중소득국(4466∼1만3845달러)을 중진국으로 분류했다. 그 이상은 고소득국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1994년 고소득국 기준(GNI 1만3845달러)을 넘어섰다. 보고서에서 극복 사례로 함께 제시된 폴란드, 칠레와 비교해도 가파른 성장이다.
세계은행은 중진국 함정을 극복하기 위해 투자(investment), 기술 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의 ‘3i’ 전략을 제시했다. 저소득국 단계에서 투자 촉진을 통해 성장을 시작하고 중진국 단계 이후에는 해외 기술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는 낡은 제도와 관습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계은행의 조언이다. 그러면서 ‘3i’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을 소개했다.
세계은행은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외국자본을 유치해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연구개발(R&D)과 교육에 대한 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인 것을 한국의 성공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창조적 파괴와 혁신의 씨앗이 됐다고 분석했다. 금융·재벌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에 나섰고 시장 담합과 지배력 집중을 완화해 국내 벤처기업을 육성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고 덧붙였다.
세계은행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기적에 비유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루카스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며 “한국이 25년간 이뤄낸 성과를 오늘날 중진국이 50년 만에 달성하는 것도 기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는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지성 기재부 개발금융국장은 보고서 공개 이전에 이례적으로 사전 브리핑을 열고 “권위 있는 기관에서 한국의 성장을 극찬하고 개도국의 성장전략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이번 보고서가 단순히 우리 경제의 과거에 관한 것이 아니고 현재와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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