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유통업계에서는 ‘C커머스’가 화두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이른바 ‘알·테·쉬’를 앞세운 중국 커머스 플랫폼이 국내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C커머스의 C가 China중국가 아닌 Cross-border국경로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유통시장의 격전지로서 한국 시장은 한 단계 도약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 또 다른 태풍 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 전자 상거래C커머스 플랫폼은 국내 진출 후 빠른 성장을 보였다.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 테무, 쉬인의 월간 활성 사용자MAU 수는 동종업계 ‘전통의 강자’ 11번가와 G마켓을 추월했고, 이에 힘입어 중국 직구 거래액은 3조2,873억 원을 돌파하며 불과 2년 사이 2배 이상 급증했다.
사실 이와 같은 중국 플랫폼의 공습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알리와 테무는 아마존을 위협하고 있으며, 쉬인은 자라와 H&M을 넘어 세계 최대의 패스트패션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중국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나온 건 중국내수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과잉생산된 상품을 판매하고 공장을 계속 가동하는 것이 재고를 쌓아두는 것보다는 낫기에 덤핑에 가까운 가격으로 글로벌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 같던 C커머스 플랫폼의 성장이 최근 주춤하는 모양새다. 올 3월과 4월을 정점으로 알리와 테무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가 소폭이지만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매출액 또한 2개월 연속 줄고 있다. 유해성 논란 등이 퍼지면서 5,000원 미만 금액대의 저가 상품 소비가 급감한 것이 원인이다.
반면 국내 전자 상거래 기업의 매출액은 소폭 늘었다. 사실 이러한 정체기는 우리보다 앞서 C커머스 바람이 분 북미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테무의 거래액 증가세가 재구매율 등이 하락하며 둔화된 것인데, 한국을 비롯한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역시 북미 시장에서의 앞선 성적표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국내 유통업계 기업은 조금 안심해도 될까? 그렇지는 않다. 살펴봐야 할 것이 있다.
글로벌 플랫폼의 격전지가 된 한국
C커머스 외에도 최근 몇 년 사이 다른 글로벌 플랫폼이 국내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4월에는 아마존이 49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을 대상으로 무료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고, 6월에는 유튜브가 쇼핑 제휴 프로그램을 선보인 동시에 전 세계 최초로 쇼핑 전용 스토어 서비스를 출시했다. 어쩌다 한국 시장은 이렇게 글로벌 플랫폼의 격전지가 되었을까?
글로벌 플랫폼들은 제각기 국내 기업이 갖지 못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선 중국 플랫폼은 막강한 생산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 우위에 있다. 반면 다른 축의 유튜브나 틱톡 등은 막대한 사용자 트래픽과 콘텐츠를 앞세워 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는 자체 물류 역량을 가지고 독자적 입지를 구축한 쿠팡, 컬리 등 플레이어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요소다. 물류 창고와 배송 기사, 차량 등은 단기간내 구축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배송 경험 등에서 차이를 벌리며 국내시장을 선도하는 이들이 있기에 C커머스를 비롯한 해외 기업이 핵심 주류로 올라서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문제는 물류 역량이 부재한 대다수 기업이다. 물류는 아웃소싱하고 상품 판매에 집중하던 이들이 막대한 물류 투자로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쥔 쿠팡과 글로벌 플랫폼의 유입으로 입지를 위협받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
그러나 브랜드나 판매자 입장에서 글로벌 플랫폼의 공습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물론 단지 중국 도매시장에 의존하던 국내 셀러들은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체적인 제조 능력을 갖추고, 여기에 브랜딩 역량까지 보유했다면 더 큰 성장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있었던 제12회 유통산업주간에서 기조 발표를 맡은 BCG코리아 김연희 대표는 C커머스를 주요 화두로 던졌지만, 여기서 C는 ‘China중국’가 아닌 ‘Crossborder국경’였다. 최근 국내 전자 상거래 시장의 경쟁이 격화된 것이 국경을 넘어 진격해온 글로벌 플랫폼 때문이었듯 한국 기업도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중국 플랫폼 공습의 본질은 그간 한국 도매를 거쳐 물건을 판매했던 중국 셀러 혹은 제조 기업의 직접 진출이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한국도 해외시장에 직접 나가서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실제로 알리는 향후 3년간 한국 시장에 무려 1조5,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자세히 보면 국내 소비자를 공략하기보다 셀러와 브랜드를 모아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포석임을 알수 있다.
더욱이 이미 뷰티와 패션을 중심으로 성과를 내는 기업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존을 통해 미국은 물론 이제는 동남아시아까지 확장하고 있는 코스알엑스가 대표적이며, 마뗑킴과 마르디 메크르디 같은 국내 패션 브랜드도 일본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알리는 물론 아마존·쇼피 등 다양한 글로벌 플랫폼이 한국 셀러와 브랜드 잠재력을 알아보고 더욱 적극적으로 달려들고 있으며, 유튜브가 전 세계 최초로 스토어를 테스트할 곳으로 한국을 택한 것도 이런 면모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해외시장의 중요성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 하고 있다. 대형 마트나 편의점 등 오프라인 커머스 기업이 이미 체감했듯 내수 시장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해외로 나아가야 하고, 여기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다면 C커머스 등 해외 플랫폼의 공습이 더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전조는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는 C2C 패션 커머스 포시마크를, 쿠팡은 세계 최대의 명품 커머스 파페치를 인수했다. 순수 국내 기업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큐텐은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 등을 품고 덩치를 불린 데 이어 북미의 위시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크로스보더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C커머스의 공습은 우리만 겪는 것도 아니고, 중국 기업만의 특정한 사안도 아니다. 세계 각국의 커머스 플랫폼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경쟁하고, 이들을 통해 셀러와 브랜드 역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따라서 이는 분명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과감하게 도전하고, 또 그 과정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한국 커머스 생태계 전체가 더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기묘한(유통 전문 칼럼니스트)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바로가기_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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