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4일 연극 ‘벚꽃동산’ 개막 첫날 배우 박해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작품의 절정을 향해가는 장면에서 대사를 통째로 잊어버렸다. 앞이 캄캄한 순간을 전도연 손상규 유병훈 등 동료 배우들이 갖가지 애드리브로 끌어줬다. 박해수는 “동료들이 서로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무대”라고 말했다.
박해수는 최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출연진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공연 초반에는 모두가 힘이 넘치고 날카로웠어요. 배우 한 명 한 명이 무대 위에서 부딪치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점점 갈수록 서로의 대사를 받아주고 하고 싶은 연기를 하도록 도와주는 공연이 됐어요. 모두가 서로의 에어백이 된 셈이죠.”
박해수가 연기한 황두식은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해 성공한 사업가. 부잣집 따님 전도연의 몰락과 함께 부와 지위를 모두 얻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열등감과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인물이다. 박해수는 “연출을 맡은 사이먼 스톤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했다. “어릴 적 저에게 아버지는 덩치도 우람하고 무서웠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런 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모습을 연출가와 얘기했죠. 아버지에 대한 인정 욕구, 애정 결핍 등 이런 점들이 저에게도 있어서인지 공연 중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 적도 있어요.”
수많은 연극 무대에 서 왔지만 ‘벚꽃동산’은 배우로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무대 위에서 사전에 약속한 장치 없이 서로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저는 계획적으로 연기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래프를 그린 적도 있고요. ‘벚꽃동산’에서 새로운 접근을 해보니 저도 모르는 제 연기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더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매체 연기에 몸담을 예정이지만 언젠가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오고 싶어요.”
공연은 서울 마곡동 LG아트센터에서 오는 7일까지 열린다. 서울 공연을 마치고 내년 3월 열리는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해외 투어 공연도 추진 중이다.
구교범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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