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e커머스 계열사인 G마켓 신임 대표이사 부사장에 정형권 전 알리바바코리아 총괄을 선임했다.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중국 기업의 한국법인 수장을 전격 영입한 것이다.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비정기 쇄신 인사를 통해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e커머스 사업의 혁신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G마켓 외부 출신으로 물갈이
신세계는 19일 G마켓 대표에 정 전 총괄을 신규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1973년생인 정 대표는 골드만삭스, 크레디트스위스(CS)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에서 15년간 뱅커로 근무하다 2015년 쿠팡에 재무담당 임원으로 영입됐다. 이후 2017년부터 알리바바코리아 총괄 겸 알리페이코리아 대표를 맡았다.
신세계 관계자는 “투자·e커머스·핀테크업계를 두루 거친 재무 전문가로 G마켓의 체질 개선을 끌어낼 적임자”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정 회장과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정 대표는 브라운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정 회장도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신세계는 G마켓의 대표뿐 아니라 핵심 임원까지 외부 출신으로 교체했다. 최고제품책임자(CPO)에 해당하는 PX본부장에 네이버 출신 김정우 상무를, 신설 조직인 테크본부장엔 쿠팡 출신 오참 상무를 선임했다.
또 다른 e커머스 계열사 SSG닷컴 대표엔 내부 출신인 최훈학 전무가 내정됐다. 1972년생인 최 신임 대표는 2000년 신세계그룹에 입사해 이마트를 거쳐 지난해 SSG닷컴으로 옮겨 영업본부장을 맡았다. 외부 출신으로 대거 물갈이한 G마켓과 달리 SSG닷컴 대표는 그로서리 및 물류 경쟁력 강화에 힘써온 최 전무가 겸직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정용진 “이전과 다른 시각 가져야”
e커머스 계열사의 파격 인사는 정 회장의 쇄신 의지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회장으로 승진하기에 앞서 작년 11월 그룹 경영전략실에 계열사의 경쟁력과 시장 상황을 분석하는 ‘경영진단팀’을 신설했다. 이 팀에서 신세계의 온라인 사업 경쟁력을 우선 분석했고 정 회장은 이를 토대로 인사와 물류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정 회장은 최근 “지난 20년간 신세계가 국내 유통시장을 선도했으나 현재는 중요한 변곡점에 섰다”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그룹을 돌아보고 뼈를 깎는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쇄신 의지가 외부 전문가 대거 영입이라는 충격 요법으로 구체화됐다는 분석이다.
정 회장은 4월엔 돌연 신세계건설 대표를 교체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책임을 물었다. 실적이 부진하면 연말 정기인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언제든 경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조직에 줬다.
신세계 e커머스 사업의 양대 축인 G마켓과 SSG닷컴의 사정도 신세계건설과 다르지 않다. 신세계는 2021년 약 3조4400억원을 투자해 미국 이베이로부터 G마켓을 인수했다. 쿠팡을 제치고 단숨에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인수 3년이 지난 현재 G마켓의 존재감은 되레 약화했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던 회사가 2022년부터는 해마다 수백억원씩 적자를 내고 있다.
SSG닷컴에선 ‘눈덩이 적자’가 발생했다. 2021년부터 작년까지 3년 연속 1000억원대 손실을 봤다. 쿠팡처럼 상품을 대규모로 직매입하고 대형 물류센터를 지은 영향이 컸다. SSG닷컴은 결국 물류망을 직접 운영한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최근 CJ대한통운에 위탁하기로 했다.
안재광/라현진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