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결정을 기다리자는 의대 교수들의 주장을 존중하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2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의대 정원 확대 차원을 넘어, 보다 근원적인 보완책과 해법을 논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2025학년도 전국 40개 의과대학 입학정원이 4567명으로 확정됐다. 1509명 늘어난 규모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것은 1998년 이후 27년 만이다. 2000년 의약분업 당시에는 의대 정원 351명 감축이 결정됐고, 19년 동안 동결됐다. 조 교육감은 "의대 정원의 적정 규모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20여 년 동안 치열하게 벌어졌고 지금도 논쟁이 진행 중"이라며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살피고 조율해 보다 성숙한 대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그는 대법원 결정을 지켜보자고도 했다. 조 교육감은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의대 증원 집행 정지를 결정하는 대법원의 재항고심이 나올 때까지 대학의 입시 요강 발표를 중지하라고 요구하고 대법원에서 불리한 결정이 나오더라도 결과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며 "긴 ‘의료 대란’ 속에서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 낸 긍정적 발표"이고 평가했다. 이어 "대법원 재항고심 결정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며 "대법원이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고려해 평상시보다 신속하게 결정을 내린다면, 긴 의료대란의 ‘출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와는 별도로, 그와 관련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논의와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단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론, 지역 간 의료 불균형,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무리한 의대 쏠림 등 현행 보건의료 체계의 다양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입장"이라며 "의대 증원과 함께 우리 사회 구조 변화를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개혁하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대 쏠림현상을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 교육감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소년들의 장래 희망이 크게 바뀌어 예전 같으면 과학자나 공학자를 꿈꿨을 학생들까지 의사가 되겠다고 한다"며 "평생직장이라고 믿었던 일터에서 갑자기 쫓겨난 이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 탓"이라고 평가했다. 또 "사회 여러 분야에서 경쟁이 격화됐지만, 경쟁에서 뒤처진 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하다"며 "학생과 학부모가 의사처럼 면허를 통해 지위가 보장되는 직종으로 몰린 것은 그 결과"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서열화 구조에서 입시 경쟁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의대 정원 확대가 우리 교육을 왜곡하지 않고 오히려 순기능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논의가 절실하다고 했다. 극단적인 의대 쏠림 현상이 바로 잡히지 않는다면, 의대 정원 확대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의 부작용이 크다고 했다. 대학 교육에 큰 공백이 생기고, 특히 자연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위기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교육감은 "한국의 선진국 진입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기술 연구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늘어나는 N수생이 입시 경쟁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수능 출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친다고 했다. 조 교육감은 "고등학교 3학년 재학생,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등 지적 배경과 수준이 천차만별인 수험생이 같은 시험을 치른다면, 평가의 본래 취지에 걸맞은 문항을 출제하기 어렵다"며 "오로지 변별만을 위한 문항이 출제되면 사교육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했다.
지방 의료 회복을 위해서는 지역인재 전형 확대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지역의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은 "지역인재 전형 확대만으로는 지역의 의료 공백을 메우는 차원을 넘어, 지역 인재가 지역에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기 어렵다"며 "의대 졸업 후 일정 기간 해당 지역 의료 기관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지역의사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