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한류 콘텐츠 제한령)’으로 중단됐던 한국 가수의 중국 현지 공연이 9년 만에 재개된다. 부산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 ‘세이수미(Say Sue Me)’의 7월 베이징 공연이 승인되면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 이후 명맥이 끊긴 K팝 스타의 중국 공연이 본격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23일 중국 당국에 따르면 최근 문화여유국은 국내 록 밴드 세이수미의 오는 7월 12일 베이징 특별공연을 허가했다. 세이수미는 부산 광안리를 기점으로 활동하는 서프록 성향의 4인조 인디밴드다.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앨범과 노래 부문을 모두 수상하면서 평단의 찬사를 받은 실력파 밴드다. 밴드 특유의 몽환적 사운드로 두꺼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당국이 국내 가수의 베이징 라이브 단독 공연을 허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16년 7월 주한 미군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이후 중국은 한한령을 통해 대중음악 공연 등 한류 콘텐츠의 중국 진출을 철저히 차단해왔기 때문이다. 이 탓에 중국에서 한국 가수의 단독 공연은 2015년 빅뱅이 11개 도시 투어를 진행한 이후 9년여간 명맥이 끊긴 상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한한령 해제 조짐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이달 베이징 국가대극원 콘서트홀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이 8년 만에 재개된 게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오던 조수미는 2017년 2월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에서 순회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중국 당국으로부터 공연 취소를 통보받은 뒤 중국 무대에서 서지 못했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였다. 8년 만에 재개된 조수미의 공연은 중국 각지에서 온 팬들로 객석이 가득 찼다. 당시 조수미는 “다시 중국 무대에 서게 돼 행복하다”는 소감을 남겼다.
또 당국은 최근 들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 위주로 한국 음악가들의 단발성 공연을 조금씩 허가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씨가 중국·일본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 북경비즈니스센터가 청두방송국과 함께 지난 3~4일 양일간 쓰촨성 청두 공연장에서 ‘한중 문화교류를 위한 K팝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한국 공연팀은 아이브의 ‘아이엠’, 블랙핑크의 ‘핑크베놈’ 등의 곡을 가야금 연주에 접목한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윤호진 콘진원 북경센터센터장은 “올 하반기부터는 중국에서 K팝 라이브 공연이 재개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달 방중한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과 만나 "문화콘텐츠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양국 국민들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한한령 해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중국이 전면적 한한령 해제에 나설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세이수미는 국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인디밴드여서 K팝 스타에 대한 본격적 공연 재개로 보긴 어렵다는 점에서다. 다만 엔터 업계는 세이수미의 이번 공연이 한한령 해제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엔터 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이 대중 가수의 공연을 9년 만에 허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고무적"이라며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하루 빨리 중국에서 K팝 공연이 본격 재개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지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