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김제의 만경농공단지, 지평선산업단지에는 ‘주식회사 호룡’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공장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각 단지에 5만1702㎡, 9만3899㎡에 이르는 HR E&I(옛 호룡)의 미니신도시급 공장이 랜드마크처럼 자리잡고 있다.
HR E&I는 고소작업차, 고가사다리차, 크레인, 콘크리트펌프카 등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고소 차량 전문기업이다. 이 중 고소작업차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사람이 탑승해 빌딩을 보수하거나 건설자재를 운반하는 작업 등에 쓰이는 특수장치 차량이다. 20~90m 높이의 고소작업차를 생산한다.
아파트 30층 높이인 90m짜리 고소작업차를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국내에서 HR E&I가 유일하다. 해외에서도 경쟁자가 드물다. 구조물의 기둥을 뜻하는 ‘붐(boom)’을 높게 뻗칠 때 쉽게 휘지 않도록 평평한 사각 면에 오차범위 0.5㎜ 이내의 정밀한 굴곡을 가미하는 ‘다단 절곡’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다. 김동열 HR E&I 대표는 지난 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업체를 비롯한 국내외 경쟁사들은 대부분 30m급 제품을 생산하고 40m 이상부터는 우리가 독과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며 “작업 높이가 높은 차량일수록 부가가치도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HR E&I의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888억원, 81억원이다. 지난해 매출 중 40%가 수출 물량이다. 새 먹거리는 전기 미니굴착기, 전기 구동 자주식 크레인 등 전기시스템 사업이다. 실내 등 폐쇄된 공간에서 매연이나 큰 소음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고속으로 1시간, 완속으로 4시간 충전하면 고부하 기준으로 4.5시간 연속으로 작업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원격 조종도 가능해 중대재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대 인양능력 4.5t, 9t급의 전기 구동 지주식 크레인은 2018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HR E&I는 지난해 미국 MEC와 전동방식 핸들러, 자주식 크레인, 고소장비 등을 5년간 15억달러(약 2조원)어치 수출하는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HR E&I가 내년 30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예상하는 이유다. 전동화 모델 증산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내년 하반기엔 증시 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HR E&I는 오는 10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과 ‘동반성장 네트워크론’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HR E&I의 협력업체는 납품 발주서를 근거로 연간 15억원(연 2.9%)의 생산자금을 중진공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증산을 앞두고 있어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HR E&I의 공장엔 외국인이 없다. 인근 마이스터고, 폴리텍대 등과 협력해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있다. 고졸과 대졸 초봉이 각각 연 3800만원, 4000만원으로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규모가 크고 처우가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어서 청년 인재들이 선호하는 ‘김제의 삼성’으로 통한다.
올해 1월부터 HR E&I를 이끌고 있는 김 대표는 1990년 호룡 설립 당시 창업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임직원 및 협력업체와 더불어 지속 가능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것이 큰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김제=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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