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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이 부른 아이러니…119 구급차 '묻지마 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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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대형 병원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 확실히 줄었습니다.”(김대근 전주완산소방서 구급팀장)

“의료대란 전에 비해 비응급 환자로 인한 출동이 40%가량 감소했다고 봅니다.”(김재용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 구급정책국장)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벌어진 ‘의료대란’ 사태가 두 달이 돼가면서 의료 현장에서 ‘119 구급차’의 이용행태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긴급하거나 위중하지 않은 환자도 무조건 119로 연락해 구급차 이송을 요구하는 사례가 잦았지만 최근엔 다르다.

종합병원에서 위중한 환자를 다루는 것만도 벅차다는 점이 거듭 알려지면서 경증 환자가 스스로 119 이송을 포기하고 외래진료를 선택하거나, 상급병원 대신 1차 동네 병·의원이나 2차 중급병원으로 이송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의료대란이 의도치 않게 의료 현장의 질서를 일부 되찾게 한 것이다.
○“무조건 종합병원” 생떼 줄어
12일 각 지역 소방본부에 따르면 의료계 집단행동 후 구급차 출동 건수는 소폭 감소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의료계 집단행동이 이뤄지기 전인 지난 2월 1~7일 구급차 출동 건수는 하루 평균 1490건이었다. 본격적인 파업 진행 이후인 2월 21일부터 4월 8일까지는 하루 평균 1390건으로 100건 줄었다.

경기소방본부 관계자도 “의료대란 이전에 비해 출동이 평균 5~10% 정도 감소했다”고 말했다. 광주소방안전본부도 의료계 집단행동 이전 대비 구급차 출동 건수가 3~5% 정도 줄었다고 밝혔다.

일선 현장의 구급 대원들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비응급 환자의 119 호출이 크게 줄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당장 응급실에 가자는 환자와 보호자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실제로 비응급 환자라고 판단하면서도 대처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연도별 응급실 내원 환자 현황’ 자료를 보면 2022년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은 환자 약 49.4%가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케이타스(KTAS: 한국형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도구) 4, 5등급이었다.

무조건 대형 병원에 가자는 생떼도 감소했다. 김대근 구급팀장은 “과거에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무조건 대형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잦았다”며 “이제는 가까운 병원으로만 이송돼도 안도하는 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수룡 세종소방본부 구급상황관리실 관계자는 “신고자들이 과거보단 병원에 신중하게 가는 편”이라며 “출동한 구급대원에게 상태를 확인받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해 스스로 ‘나중에 직접 병원에 갈 테니 돌아가시라’는 이들이 20~30% 늘었다”고 말했다.
○‘동네병원 진료’ 더 늘어야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가 빠지면서 환자들은 중소병원을 더 많이 찾고 있다. 서울에 있는 중소병원 중에선 병상 가동률이 70~80%대에서 90% 이상으로 높아진 곳이 적지 않다. 같은 기간 국내 주요 8개의 대형 대학병원 병상 가동률은 79%에서 55%로 24%포인트 줄었다. 한 ‘빅5’ 대학병원 관계자는 “척추 전문병원 등 중급 병원에서도 충분히 질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 환자들이 많다”며 “의료대란 이후에는 큰 병원 선호도가 바뀔 것 같다”고 했다.

이번 의료대란을 계기로 환자들이 ‘급하면 큰 병원’이 아니라 ‘급하면 가까운 병원’을 찾는 쪽으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형민 한림대 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대형 병원에서 응급실 환자가 줄고 있는 건 큰 병원에 가고 싶은데도 못 가니 물리적으로 찾는 이들 자체가 감소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경증 환자 중에서도 특수한 상황으로 대형 병원에서 봐야 하거나, 원래 치료받던 곳으로 가야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며 “1차 의료를 의원에서 더 많이 맡을 수 있도록 수가를 높이는 등의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유림/최해련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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