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은 왜 나왔을까. 기기 장비와 클린룸 등에 대한 투자비 부담이 크고 제조에 필요한 전문성이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도체 칩 크기가 커지고 서로 다른 종류의 칩 간 결합이 늘어나고 있다. 메모리 칩과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따로 만든 뒤 다시 붙여 쓰기도 한다. 이럴 땐 칩 디자인과 제조를 아우르는 종합반도체회사(IDM)가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통상 디자인 위주 발전이 강할 땐 IDM에 유리하고 고도화가 제조법에 몰릴 땐 파운드리가 우위를 점한다. 2015년 극자외선(EUV) 도입은 파운드리인 TSMC가 더 앞섰다.
하지만 이번엔 양상이 조금 다르다. 주로 디자인과 재료 변화에 주력하던 인텔이 장비를 바꾸고 있다. 반대로 TSMC는 과감한 장비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신규 장비인 고개구율(High NA) EUV 투자 금액은 대당 2700만유로로 전 세대에 비해 두 배에 가깝다.
파운드리가 막대한 금액을 장비에 투자하려면 충분한 수요를 예상해야 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미 성장이 멈췄고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한 투자도 주춤하다. 인공지능(AI)은 성장세지만 AI 서버를 제외한 서버 투자는 감소하고 있다. 반면 인텔은 스스로 디자인하고, 제조하고, 판매도 한다. 자신감 있게 유연한 투자를 벌일 수 있는 이유다. 올해 ASML의 신규 EUV 장비는 인텔이 첫 번째 구매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시험 생산을 시작해 내년엔 양산 라인을 도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26년엔 TSMC 공정에서 생산된 제품과의 본격적인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TSMC는 보통 디자인 변화에 대응이 느렸고 공정 변화에는 빨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둘 다 느리다. 느린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인텔 제국의 복귀라는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삼성은 어디에 있을까. 삼성의 전략적 위치는 인텔보다 유리하다. 요즘엔 디자인과 제조 통합뿐 아니라 로직 칩과 메모리 칩 통합까지도 이뤄지고 있다. 디바이스(스마트폰)와 칩의 유기적인 변화도 나타나야 할 때다. 분업으로 일관되던 반도체업계에 이번에야말로 통합된 의사결정의 힘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우건 매뉴라이프자산운용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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