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로 전락한 기원전 8세기 고대 브리튼 왕국의 리어왕이 서울 남산 자락에서 판소리를 한다. 29일부터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창극 ‘리어’에서다. ‘리어’는 2년 전 초연에서 9회차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 작품이다. 서른 살의 젊은 배우 김준수(사진)가 주인공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김준수는 이번에도 리어왕에 도전한다.
김준수는 공연을 앞두고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초연 때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 급급해 역할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이번에는 지난 공연에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꼽히는 ‘리어왕’은 자기에게 아부하는 첫째 딸과 둘째 딸에게 모든 권력을 넘기지만 두 딸에게 배신당해 결국 미쳐버리는 내용이다.
리어왕을 더욱 깊숙이 이해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김준수는 그의 아버지를 꼽았다. “어릴 적에는 정말 리어왕처럼 엄하고 고집이 세셨던 아버지가 어느샌가 사소한 걸로 서운해하시고 외롭다는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어요. 불과 2년 사이에 많이 약해지신 모습을 보고 인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어요.”
그는 “리어왕의 행동을 아버지 마음으로 투영해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며 “리어왕이 딸들에게 내뱉은 모진 말들은 자기를 한 번 더 알아달라는 마음이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리어’를 통해 가족을 돌아보게 된 건 김준수 배우뿐만이 아니었다. 자기 딸과 재회하며 지난날의 후회를 노래하는 리어왕을 보며 정영두 연출 역시 그의 가족을 향한 미안한 마음을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400년 전 영국에서 쓰인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간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관객들에게도 가족과 자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김준수는 지금까지 시도해 본 적 없는 연기에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계산되지 않고 순간순간 나오는 즉흥적인 연기가 리어를 더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가끔은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진짜 김준수로서 이성의 끈을 놓고 무대에서 연기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든다”고 말했다. 창극 ‘리어’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글=구교범 기자/사진=임대철 기자 gugyobe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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