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지난해 ‘예산 삭감’ 논란이 불거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전반을 검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부가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위해 R&D 예산 구조 개혁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자 과학계와 대학가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29일 조달청 나라장터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26일 ‘R&D 구조개혁 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용역 공고를 냈다. 공고문은 연구 목적을 ‘국가 R&D 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라고 명시했다. 연구 분야는 국가 R&D 추진 체계의 개선 방안과 중장기적 투자가 집중돼야 할 분야를 찾는 일이다. 연구는 오는 6월 말 완료된다. 이르면 내년 R&D 사업 예산이 이번 연구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R&D 분야 예산 검토를 먼저 제안한 것은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자문기구인 중장기전략위원회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장기전략위는 20~50년 단위의 국가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는 일을 담당한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경제정책 방향에 담긴 ‘미래세대 비전 및 중장기 전략 마련’ 방침에 따라 R&D 분야도 들여다보기 위해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이라며 “특정한 결론을 염두에 두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과학계는 이번 연구 결과가 R&D 예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R&D 예산과 관련해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이 전반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커서다. 업계에선 연구 수요를 조사하는 특정 민간 협회가 친분이 있는 기업과 기관에 R&D 연구 과제, 예산을 나눠준다는 비판이 많았다. 특정 대학·단체가 연구 과제를 싹쓸이하는 ‘R&D 카르텔’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정부도 문제의식을 갖고 올해 R&D 분야 예산을 28조6000억원(일반 재정사업 이전 예산 포함)으로 지난해 대비 약 8%(2조5000억원) 삭감했다. R&D 예산이 줄어든 것은 1991년 이후 33년 만이다.
이런 예산 삭감은 윤석열 정부가 과학계 연구인력을 홀대한다는 논란을 초래했다. 정부는 지난해 말 예산을 줄이는 와중에도 장학금과 연구장려금을 포함한 기초연구 지원 금액 등을 증액했다.
이런 조치에도 과학계에선 정부의 일괄적인 행정 행위로 적지 않은 연구자의 인건비가 깎이고 필요한 연구가 중단됐다는 불만이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과학계 반발을 고려해 지난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급 세 명을 전원 교체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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