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당대표 사천(私薦)’ 논란이 당내 계파 간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현역 의원에 대한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 혹은 20%에 포함돼 경선 페널티를 받게 된 비명(비이재명)계가 공개 반발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비명계 사이에선 이 대표 2선 후퇴 요구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 대표는 “혁신 공천은 피할 수 없는, 가죽을 벗기는 과정”이라며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일 민주당은 총선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터져 나오며 온종일 숨가쁘게 돌아갔다. 비명계 박용진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에 포함됐음을 통보받았다”며 재심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강북을에서 재선을 한 박 의원은 친명(친이재명)계 정봉주 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등과 공천 경쟁을 하고 있다. 박 의원은 2022년 당대표 선거에 출마해 이 대표와 경쟁하기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박용진 후보도 공천 걱정하지 않는 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에 포함되면 경선 득표의 30%가 감산되는 페널티를 받는다. 사실상 컷오프(공천 배제)로 받아들여진다. 박 의원은 “힘을 가진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고 그를 지키겠다는 정치는 정작 국민에게 충성하고 국민의 삶을 지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고 했다.
비명계인 윤영찬 의원도 하위 10% 평가 통보를 받았다며 “비명계 공천 학살이고 특정인 찍어내기 공천”이라고 반발했다. 윤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성남중원에는 친명 인사인 현근택 변호사가 출마 선언을 했지만 성희롱 논란으로 사퇴했다. 그러자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하겠다던 친명계 이수진 의원(비례대표)이 뛰어들었다. 윤 의원은 “지독하고 잔인하다”고 했다.
비명계의 움직임은 보다 조직화되고 있다. 친문(친문재인)계인 홍영표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당을 정상화하는 데 우리의 지혜와 힘을 모아보겠다”며 집단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투명하고 공정한 공천이 무너진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며 “비정상적인 상태는 빨리 종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 대표의 2선 후퇴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친문 의원들은 전날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을 한 데 이어 이날도 홍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에 모였다. 모임에는 홍 의원과 윤 의원, 전해철·송갑석·박영순 의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당장 집단으로 탈당할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그러나 비명계를 대상으로 한 하위 평가 통보와 친명 중심의 공천자 발표가 이어지면 탈당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비명계 한 중진 의원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 시스템 공천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며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명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당 지도부는 이날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진통”이라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런 민주당 상황에 대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왜 박용진이 10%에 들어가고, 김영주가 20%에 들어가냐”며 “이 대표는 (하위) 1%에 들어갈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이 왜 모든 함수를 통해 다 이재명이 원하는 결과만 나오냐”고 했다.
한재영/배성수/원종환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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