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22일 14:5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그룹 계열사들이 올해 1월에만 4조원 넘는 현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에 비해 40% 넘게 불어난 금액이다. 그룹 핵심사업인 반도체·배터리 사업자금을 선제적으로 확충하기 위한 목적이다. 여기에 회사채 시장에 기관투자가의 매수세가 몰리는 등 자금시장 조달 여건이 좋아진 영향도 미쳤다.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와 SK온을 비롯한 SK그룹 계열사가 올 들어 이달 말까지 글로벌본드·회사채로 4조2400억원을 조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월에 SK그룹 계열사가 조달한 금액(2조9234억원)에 비해 45.0% 늘어난 규모다. 이달 SK그룹의 조달 규모는 다른 주요 그룹과 비교해도 가장 많았다.
SK하이닉스와 SK온 배터리 자회사인 SK배터리아메리카가 이달 각각 15억달러(1조9950억원), 5억달러(6650억원) 규모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하면서 그룹 조달을 주도했다. SK E&S(5000억원), SK인천석유화학(3000억원), SK브로드밴드(2300억원), SK렌터카(1500억원) 등도 회사채로 조달에 착수했다. SK실트론은 최대 2000억원을 조달한다. SK지오센트릭도 29일에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
SK그룹이 나란히 조달에 나선 것은 만기가 도래하는 빚을 갚기 위한 목적이다. 1년 이하 단기차입금을 3년 이상 장기차입금으로 전환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다. 단기차입금은 수시로 차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시로 달라지는 시장 불확실성에 직면한다. 단기차입금을 줄이고, 장기차입금으로 전환하면 그만큼 상환 리스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SK E&S도 이번에 3·5년 만기의 회사채로 조달한 자금을 농협은행·국민은행에서 1년 만기로 빌린 단기차입금 2500억원을 상환한다. SK실트론도 3년 만기의 회사채로 1200억원가량의 단기차입금을 상환할 예정이다.
SK그룹이 주력 사업인 반도체·배터리 설비자금을 일찌감치 확보해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한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올 들어 기관투자가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조달 폭을 늘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SK E&S는 3000억원의 규모의 회사채 발행 계획을 세웠지만 수요 예측 과정에서 기관 자금으로 1조5100억원이 몰렸다. 이 회사는 수요가 몰리자 발행 규모를 2000억원 증액한 5000억원으로 확정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찌감치 북클로징(회계장부 마감)에 나선 기관들이 적잖았다"며 "올 들어 모처럼 투자를 재개하면서 회사채를 쓸어 담는 기관들의 수요가 맹렬해졌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