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패션 플랫폼인 브랜디에서 일하면서 의류 도소매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하지만 동대문은 여전히 현금 위주의 거래인 데다 많은 도소매 업체들이 장부에 손으로 써가면서 관리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방식을 고수하고 있었죠. 경영방식을 혁신해야 동대문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안강휘 주피터랩스 대표는 한경 긱스(Geeks)와의 인터뷰에서 도소매 경영 효율화 솔루션 '위빙'을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주피터랩스는 도소매 솔루션 위빙과 패션사업자 대상 풀필먼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안 대표는 "위빙을 쓰면 기존 동대문 업무방식에서 발생하는 수기업무의 5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매와 소매 정보 연결한 솔루션 개발
안 대표는 LG전자, SK하이닉스, 쿠팡 등에서 전략기획 업무 등을 해왔다. 그의 커리어 중 주피터랩스 창업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건 동대문 기반 패션 플랫폼 회사인 브랜디에서 패션, 물류, 유통을 잇는 SCM 총괄로 일했던 경험이었다."동대문 시장이 젊은층의 유입,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 동대문 인프라의 탈동대문 현상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동대문 도소매 업체들의 경영방식은 옛스러웠죠. 하나의 정보가 아닌 도매와 소매 상품정보가 각각 따로 관리돼 필연적으로 이를 비교하기 위한 수기 업무와 '휴먼 에러'가 발생하는 구조였어요. 엄청난 비효율이 발생하고 있었고, 누군가 당장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를 바꾸지 않으면 중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매와 소매 상품정보를 하나의 데이터로 연결해 제공하는 솔루션을 만들면 동대문 시장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이유다. 1년 여간의 시장조사와 개발과정을 통해 도소매 운영 솔루션 위빙을 만들었다. "도매 POS의 상품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소매까지 연결시켰어요. POS에 한번만 등록하면 상품정보가 자동으로 연동돼 대형 플랫폼 같은 셀러들에게 노출되도록 했죠."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재고 및 상품 발주 관리도 지원한다. 거래 데이터를 AI가 학습해 수요를 예측, 재고량 등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거래처 중요도에 따른 재고할당과 시즌별 상품 추천도 가능하다. "소매사업자의 사입, 도매사업자의 상품 출고, 실제 물류센터의 입고 수량 등 모든 물류흐름 정보가 공유됩니다. 지금 동대문 도소매 업체들이 수기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솔루션을 통해 자동화한 겁니다."
패션 사업자 대상으로 풀필먼트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사입부터 배송까지 모든 풀필먼트 영역을 수행한다. 안 대표는 "자체 개발한 위빙 솔루션을 활용하기 때문에 도소매와 연동되는 데이터를 통해 효율적인 풀필먼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주피터랩스는 풀필먼트 사업을 통해 올해 8억원의 매출을 냈다. 다수의 초기 스타트업들이 외부 투자금을 쓰면서 직접 매출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했을 때 어느 정도의 수익성을 증명한 셈이다.
"동대문 넘어선 혁신 솔루션 회사 될 것"
직접 동대문 현장의 변화를 목격한만큼 비즈니스모델에 자신감을 갖고 주피터랩스를 창업한 안 대표였지만 사업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자신이 있었지만 사실 주변 시선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투자시장이 얼어붙었던 시기였고, 투자자들은 동대문이나 물류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주피터랩스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업체였고요." 하지만 자체 MVP모델이 나오고 이 모델을 인정받아 초기 투자유치에 성공했을 때 안 대표는 다시 자신감을 되찾았다고 했다. "주피터랩스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더욱 열심히 일을 했죠." 주피터랩스는 지난 7월 한국디자인진흥원의 스타일테크 기업에 선정됐고, 8월엔 7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9월 대형 패션플랫폼 지그재그와 상품 공급 및 물류대행 계약을 체결해 지그재그의 풀필먼트를 담당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한국관광공사 사장상도 받았다. 안 대표는 "202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솔루션 비즈니스를 성장시키는 데 속도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처음 서울 양재동 사무실을 얻어 입주했을 때를 회상했다. "신내, 동대문 등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 직원을 하나 둘 영입하고 양재동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회사에 제대로 된 백오피스 조직이 갖춰졌던 시점이었거든요." 현재 주피터랩스는 20여명의 직원을 갖춘 회사로 성장했다. 서울 성수동에 풀필먼트 사업을 위한 물류센터도 갖췄다.
안 대표는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대문이 다시 글로벌 패션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대문 덕분에 많은 소매사업자와 쇼핑몰이 생겼고, K패션 성장의 발판이 됐죠. 지금은 가격경쟁력이 좋은 광저우 도매시장 영향으로 해외 바이어들의 발걸음이 끊겨 힘든 상황이지만 경영 혁신을 통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피터랩스가 그 혁신에 함께할 것이고요. 더 먼 미래엔 동대문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산업의 운영 혁신을 이끄는 솔루션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